‘난 분명…… 죽었었는데.’ 델티움 최고의 명문가, 바이에른의 공녀 아네트는 결혼식 당일로 회귀했다. 그녀의 팔을 단단히 움켜쥐고 식장으로 들어서는 남자의 얼굴은 사나웠다. 그는 아네트를 끔찍하도록 증오했으니까. 이제 그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하게 될 터였다. “이러지 말아요, 라펠.” “쉿, 아네트. 내가 정말로 그만두길 바란다면 제발 그 야한 구멍 좀 벌름대지 마. 당장이라도 쑤셔 박고 싶어서 미칠 것 같으니까.” 그녀는 눈물 고인 눈으로 자신의 옷을 찢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끔찍하게 못됐고, 거만했으며, 아네트의 몸만 탐하는 짐승이었다. 그녀가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저 못된 짐승을 길들여야만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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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이니까 눈에 띄려고 하지 마. 주인공들이 돋보일 수 있게끔 옆에서 도와줘. 그게 바로 ‘조연’의 역할이잖아? 그녀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소리였다. 아주 지긋지긋한 소리이기도 했다. ‘나도 주인공이 되고 싶은데. 돋보이고 싶은데. 왜 너희가 내 역할을 결정해?’ 이대로 가면 1년 후, 자신은 죽게 될 것이다. 그것도 멍청한 여주인공과 오만한 남주인공의 치정 싸움에 말려들어,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하게 되겠지. ‘누가 그렇게 죽어줄 줄 알고?’ 그녀는 악에 받친 채로 요요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불러낸, 눈앞의 아름다운 악마에게 소원을 빌었다. “난 이대로 흔해 빠진 소모품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내게 힘을 주세요.” 남주인공이고, 여주인공이고 다 죽어버리라지. 나만 살아남으면 돼. 그걸 위해선 악마에게 다리를 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 이렇게 시시한 조연으로 죽느니, 그편이 훨씬 나을 테니까.
“저 머저리에게서 도망쳐, 새신부 씨.” 결혼식 날, 하객으로 온 남자는 충고했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도. 나는 전남편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 하지만 그는 헌신한 날 헌신짝처럼 버렸다. 옆에는 꽃처럼 어여쁜, 새 정부를 끼고서. 죽음 앞에서 새로운 삶을 손에 넣은 나는 굳게 다짐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저 악랄한 것들을 파멸시키겠노라고. * * * “너는 잠들 수 없는 밤에만 날 찾지.” 침실에 앉아 그녀를 맞아들인 남자가 픽 웃었다. 올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태도였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여자야.” 스르르 몸을 일으키자, 그가 걸치고 있던 시트가 떨어졌다. 달빛이 그의 탄탄한 육체를 핥듯이 은근하게 비추었다. “이리 와.” 짐승 같은 눈을 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전남편 따윈 생각도 안 나게 해 줄 테니.” 붉은 입술을 느릿하게 핥는 그의 얼굴에 야살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다미에는 난생처음 남자와 불장난을 했다. 그것도 수도에서 소문난 탕아, 아카드 발레리안과. 그와 잔 건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다미에는 어제 실연당했고, 그녀를 찬 첫사랑은 잔인하게 말했다. “다른 남자를 한번 찾아봐.” 그리고 그녀가 실연당하게끔 뒤에서 조종한 의붓오빠는 웃었다. “내가 말했지? 넌 결국 내게 오게 될 거라고.” 다미에는 문득 이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해졌다. 그래서 잤다. 오늘 막 북부에 도착했다는 그 남자를 유혹해서. 아카드 발레리안은 소문처럼 끔찍하게 아름다웠고, 정욕적이었으며, 나쁜 새끼였다. “우는 얼굴이 예쁘네. 어디 더 울어 봐.” 그는 집요한 정사에 지쳐 도망치려는 다미에의 발목을 잡고, 더 지독하게 탐했다. 사나운 짐승 밑에 깔린 다미에는 말 그대로 목이 쉬도록 울었다. 그녀의 눈물마저 남김없이 받아먹은 남자가 집요하게 눈꺼풀을 핥았다. 그리고 이내 탐욕스럽게 웃었다. “앞으로도 내 밑에 깔려서 울도록 해.” 다리 사이가 헐어버릴 때까지, 라고 속삭이는 남자의 입술이 무도했다. ……아무래도 불장난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았다.
여성향 로맨스 판타지 게임, 구원 속에 빙의했다. 비록 조연이지만 기품 있고 아름다운 귀족가의 막내 따님이었다. 안락한 환경과 따스한 가족들의 사랑 아래, 막 행복해지려던 찰나. 이 세계관의 최고 흑막이 그녀의 삶에 마지막 종말처럼 스며 왔다. “이렐 엘로랑스.” 바르칸 하 마쉬. 자신의 첫 아내를 죽이고, 가문을 멸망시킬 악당. 치명적인 독을 품은 양귀비꽃 같은 남자가 오싹하게 웃으며 청혼해 왔다. “첫눈에 반했어요. 부디 나와 결혼해 주시길.” ……맙소사. 그의 손에 죽임당했다는 첫 아내가, 설마 나였어? “미안하지만 내가 그대에게 완전히 눈이 돌아 있어서.” 악마보다 더 지독한 남자가 가증스럽게도 애틋한 척 속삭였다. “만약 청혼을 거절당하면, 난 너무 속상해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네요.” 머리 위에는 [호감도 –18]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단 채로. 게임을 이미 플레이해 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를 거절하면, 어떤 엔딩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그러니 어떻게든 막아내야 했다. 그가 곧 불러일으킬, 자신의 파멸을.
여성향 로맨스 판타지 게임, 속에 빙의했다. 비록 조연이지만 기품 있고 아름다운 귀족가의 막내 따님이었다. 안락한 환경과 따스한 가족들의 사랑 아래, 막 행복해지려던 찰나. 이 세계관의 최고 흑막이 그녀의 삶에 마지막 종말처럼 스며 왔다. “이렐 엘로랑스.” 바르칸 하 마쉬. 자신의 첫 아내를 죽이고, 가문을 멸망시킬 악당. 치명적인 독을 품은 양귀비꽃 같은 남자가 오싹하게 웃으며 청혼해 왔다. “첫눈에 반했어요. 부디 나와 결혼해 주시길.” ……맙소사. 그의 손에 죽임당했다는 첫 아내가, 설마 나였어? “미안하지만 내가 그대에게 완전히 눈이 돌아 있어서.” 악마보다 더 지독한 남자가 가증스럽게도 애틋한 척 속삭였다. “만약 청혼을 거절당하면, 난 너무 속상해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네요.” 머리 위에는 [호감도 –18]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단 채로. 게임을 이미 플레이해 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를 거절하면, 어떤 엔딩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그러니 어떻게든 막아내야 했다. 그가 곧 불러일으킬, 자신의 파멸을.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개정한 버전입니다. #악녀 #팜므파탈 #소시오패스 #사이다녀 #계략녀 #모럴리스 #복수 굳이 눈물겨운 특별한 사연이 있어야만 악녀가 될 수 있는 걸까? 때로는 그저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이기적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바로 리타, 그녀 자신처럼 말이다. 금지된 주술로 ‘베르타 알베르하트’ 백작 영애의 몸을 빼앗은 리타는 생긋이 웃었다. ‘자, 이제부터 이 예쁘고 고귀한 몸으로 어떤 재미있는 놀이를 해 볼까?’ 악랄한 기대감에 부푼 그녀의 푸른 눈이 순수한 악의로 빛났다.
*본 작품은 리디북스에서 동일한 작품명으로 19세이용가와 15세이용가로 동시 서비스됩니다. 연령가에 따른 일부 장면 및 스토리 전개가 상이할 수 있으니, 연령가를 선택 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잊혀진 왕녀 미엘르. 별궁에 처박혀 죽을 날만 기다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옛 소꿉친구 루데란이 나타났다. “살아남고 싶어?” “당연하지.” “그럼 뻗대지 마. 넌 오직 내 말만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와야 해.” 얘가 어디서 부르주아 과외하다 왔나? '모른 척할 땐 언제고.' 미심쩍지만 일단은 그의 손을 잡았다. 근데 이 남자, 볼수록 이상하다. “너 어떻게 안 거야?” “알긴 뭘.” “앞날을 전부 예측했잖아? 무슨 예언자도 아니고!”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미엘르는 곧 눈치챘다. '아무래도 얘.' 회귀한 것 같지? 첫 주식이 망해서 이번엔 내 주식을 산 거구나! * * * 너는 내 첫사랑, 소꿉친구, 열등감의 대상. 아주 밉지만 많이 애틋하고, 또 갖고 싶어 안달 나는 것. 그 감정이 지금은…… '욕망이겠지. 명백히.' 그는 기회만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절박하게 달라붙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애절하게 키스하는지, 몇 번이고 눈을 떠 확인할 정도였다. 밉살스러운 말만 지껄이던 그 남자가 맞나 싶어서. “하아, 하…… 솔직히 말해 봐.” 가까스로 그를 떨쳐낸 미엘르가 숨을 고르며 물었다. “너, 나 좋아하지?” “……내가? 널?” 가까스로 이성이 돌아온 눈빛이 물었다. 지금 제정신이냐고. “나 좋아해서 이러는 거잖아. 안 그래?” “내가 뭘?” “자꾸 키스하고, 내 관심 끌려고 하고. 너 사춘기 소년이야?” “헛소리!” 남자는 비웃음을 터트렸다. 듣는 사람이 기죽을 만큼 사나운 기세였다. “네가 벌거벗고 달려든대도 이쪽은 관심 없어.” “진심이야?” “아직도 못 알아들어? 넌 철저히 기준 미달이다.” 연거푸 이어진 거절에 미엘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왜 이러는 건데? 너.” 그녀가 가리킨 곳은 그의 하반신이었다. 정확하게는 바지를 뚫을 듯이 곧추선, 그의 곧…… 휴우.
‘난 분명…… 죽었었는데.’ 델티움 최고의 명문가, 바이에른의 공녀 아네트는 결혼식 당일로 회귀했다. 그녀의 팔을 단단히 움켜쥐고 식장으로 들어서는 남자의 얼굴은 사나웠다. 그는 아네트를 끔찍하도록 증오했으니까. 이제 그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하게 될 터였다. “이러지 말아요, 라펠.” “쉿, 아네트. 내가 정말로 그만두길 바란다면 제발 그 야한 구멍 좀 벌름대지 마. 당장이라도 쑤셔 박고 싶어서 미칠 것 같으니까.” 그녀는 눈물 고인 눈으로 자신의 옷을 찢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끔찍하게 못됐고, 거만했으며, 아네트의 몸만 탐하는 짐승이었다. 그녀가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저 못된 짐승을 길들여야만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본 작품은 리디북스에서 동일한 작품명으로 19세이용가와 15세이용가로 동시 서비스됩니다. 연령가에 따른 일부 장면 및 스토리 전개가 상이할 수 있으니, 연령가를 선택 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명색이 아내니까 병문안쯤은 와줄 줄 알았다. 그러나 혼수 상태로 1년을 누워 보낼 동안, 남편은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그제야 레지나는 깨달았다. 이 덧없고 오랜 짝사랑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부인께서 이혼을 원하신다고요. 이유가 뭡니까?” “당신을 사랑해요. 간절히 바라건대 당신도 날 조금이라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사랑? 결혼도 한 부인께서 지나치게 순진한 소릴 하시는군요. 정 외로우면 개라도 한 마리 사 드리죠.” 필사적으로 용기를 쥐어짜 한 고백은 무정한 말들에 산산조각으로 난도질당했다. 더는 그러모을 마음이 없어 형식뿐인 결혼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당신의 고귀한 태에 내 씨앗을 심으려고 지금껏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데. 결실을 보지도 못하고 당신을 놓아줄 것 같습니까?” 차가운 얼굴과 달리 그녀의 어깨와 손목을 틀어쥔 손은 놀랄 만큼 뜨거웠다. “날 사랑하잖아? 당신은 절대 날 떠나지 못해.”
‘난 분명…… 죽었었는데.’ 델티움 최고의 명문가, 바이에른의 공녀 아네트는 결혼식 당일로 회귀했다. 그녀의 팔을 단단히 움켜쥐고 식장으로 들어서는 남자의 얼굴은 사나웠다. 그는 아네트를 끔찍하도록 증오했으니까. 이제 그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하게 될 터였다. “이러지 말아요, 라펠.” “쉿, 아네트. 내가 정말로 그만두길 바란다면 제발 그 야한 구멍 좀 벌름대지 마. 당장이라도 쑤셔 박고 싶어서 미칠 것 같으니까.” 그녀는 눈물 고인 눈으로 자신의 옷을 찢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끔찍하게 못됐고, 거만했으며, 아네트의 몸만 탐하는 짐승이었다. 그녀가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저 못된 짐승을 길들여야만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난 분명…… 죽었었는데.’ 델티움 최고의 명문가, 바이에른의 공녀 아네트는 결혼식 당일로 회귀했다. 그녀의 팔을 단단히 움켜쥐고 식장으로 들어서는 남자의 얼굴은 사나웠다. 그는 아네트를 끔찍하도록 증오했으니까. 이제 그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나 같은 사생아가 남편이라니, 역겹겠지.” “그럴 리 없잖아요, 라펠. 당신은 내 하나뿐인 남편인 걸요.” 전생과 달리 다정하게 말하자, 남자의 푸른 눈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그 말을 믿고 싶은 것처럼. 오해에서 시작된 정략 결혼, 이번엔 달라질 수 있을까? 회귀한 아네트의 못된 남편 길들이기!
“쉬잇, 니나. 울지 말고 기뻐해야지? 넌 ‘진화’한 거란다.” 붉은 입술 위에 흰 손가락을 갖다 댄 적발의 마녀가 요염한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널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만들어 줄게, 귀여운 니나. 모두가 널 신수라며 우러러볼 테지.” 매력적인 흑발의 대공이 뱀처럼 교활한 초록색 눈동자를 빛내며 속살거렸다. “당신의 손도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따뜻합니다. 그 누구도 당신처럼 사랑스럽고 강하진 않습니다. 내 작은 새.” 달보다 더 아름다운 은발의 마법사가 서늘한 미모에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니나는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그녀는 그저 평범한 니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것은 그렇게 시작된, 특별한 차원 이동자나 고귀한 귀족 영애도 아닌 그저 니나라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다미에는 난생처음 남자와 불장난을 했다. 그것도 수도에서 소문난 탕아, 아카드 발레리안과. 그와 잔 건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다미에는 어제 실연당했고, 그녀를 찬 첫사랑은 잔인하게 말했다. “다른 남자를 한번 찾아봐.” 그리고 그녀가 실연당하게끔 조종한 의붓오빠는 웃었다. “내가 말했지, 다미에? 넌 결국 내게 오게 될 거야.” 다미에는 이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해졌다. 그래서 화풀이로 자 버렸다. 오늘 막 북부에 도착했다는, 예쁜 쓰레기를 유혹해서. 아카드 발레리안은 소문처럼 끔찍하게 아름다웠고, 정욕적이었으며, 나쁜 새끼였다. “우는 얼굴이 예쁘네. 어디 더 울어 봐.” 밤새도록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목이 쉬도록 울어도 그는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내가 질릴 때까지.” 응? 속삭이는 남자의 입술이 무도했다. ……아무래도 불장난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았다.
“가지 마.” 늘 지독하게 굴던 소꿉친구 키어스가 이 순간만큼은 간절히 빌었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끔, 손을 단단히 옭아맨 채로. 그 순간, 유제르가 뒤에서 그녀를 가두듯 안았다. 다정한 옆집 오빠였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동생을 향한 사나운 경고였다. “미네에게서 그 손 치워. 더러우니까.” 그러나 찌르는 듯한 싸늘한 경멸에도 물러서는 이는 없었다. 두 형제 사이에 붙잡힌 그녀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파리해진 그녀의 얼굴을 향해 핥는 듯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붉게 농익은 열매의 과즙을 탐하듯, 입맛을 다시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미네?” 유제르가 의미심장한 몸짓으로 물었다. 그리고 양귀비만큼이나 붉고 요요한 머리칼을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눈웃음을 쳤다. 도무지 시선을 돌릴 수 없을 만큼 아찔하게. “오늘은 네 생일이니 네가 선택해.” 깊게 가라앉은 그의 푸른 눈이 묻고 있었다. 자신을 따라 침실로 들어올지, 아니면 키어스가 이끄는 대로 돌아 나갈지.
“쉬잇, 니나. 울지 말고 기뻐해야지? 넌 ‘진화’한 거란다.” 붉은 입술 위에 흰 손가락을 갖다 댄 적발의 마녀가 요염한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널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만들어 줄게, 귀여운 니나. 모두가 널 신수라며 우러러볼 테지.” 매력적인 흑발의 대공이 뱀처럼 교활한 초록색 눈동자를 빛내며 속살거렸다. “당신의 손도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따뜻합니다. 그 누구도 당신처럼 사랑스럽고 강하진 않습니다. 내 작은 새.” 달보다 더 아름다운 은발의 마법사가 서늘한 미모에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니나는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그녀는 그저 평범한 니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것은 그렇게 시작된, 특별한 차원 이동자나 고귀한 귀족 영애도 아닌 그저 니나라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