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가 사냥을 나갈 시간이 되었다. 매는 잠들고 쥐가 움직이는 시간, 훔친 양초에 불을 켠 소녀가 보자기를 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엔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데리러 올 생각이 있었다면 그들은 뭐든 해야 했다. 이렇게 지옥 같은 곳에 넣어 놓고 편지와 선물만 보낼 일이 아니라, 그들은 뭐라도 하면서, 얼굴을 한 번이라도 비치면서 엔제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하는 게 옳았다. 적어도 엔제는 그리 생각했다. “데리러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면 돼.” 엔제는 더는 이 엿 같은 집구석에 있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끝내 길거리를 헤매다 죽더라도 이 집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생각했다. 울렁거리는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엔제는 침대에 앉아 손을 모아 쥐고 간절히 기도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디, 제발, 이번만큼은 소원을 들어달라며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 엔제 데미가르트가 아발란스 저택에서 도망쳤다. 다른 때라면 별것 아니었을 사실이 지금 당장 아발란스에 주는 타격은 상당했다. 추격대가 그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발란스 가문의 사람들은 얼굴에서 근심을 지우지 못했다. 레티나는 끝내 지우지 못한 수치심을 삼키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엔제를 잡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말해 뭘 하니, 당연히 잡아와서 지하실에 가둬야지.” 카테리나는 언제나처럼 다정히 웃고 있었다. 레티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어리광을 부리듯이 종알거렸다. “죽여요.” “뭐…?” “엔제를 죽여 버리자구요.” 엔제가 살아 있게 되면 성가실 것이다. 엔제는 살아 있는한 저항하며 계속 도망치려고 노력할 테고, 레티나는 그 애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자존심에 금이 갈 것이다. 레티나는 불안의 싹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었다. 제 자부심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해야 했다. #가족 #복수 #성장 #힐링 #사이다 #걸크러시 #가족후회 #팔불출 #후회아빠 #후회오빠 #당찬여주 #침착여주 #권력여주 #노력여주 #눈치빠른여주 #능력여주 #구원여주 #워맨스 #로맨시스 #이야기중심 #여공남수 #호위기사여조 #차분냉정남주 #해바라기남주 #존대남주 #얼굴천재남주 #애교남주 #기사남주 #대형견남주 #직진남주
🌟 로판 소설 중 상위 7.43%
평균 이용자 수 17,276 명
* 100명이 선택하면 '명작' 칭호가 활성화 됩니다.
'명작'의 태양을 라이징 해보세요.
8년 전에 보았던 짙고 탁한 금발은 어디가고, 화려하게 변한 금발이 어색했다. 젖살도 채 빠지지 않았던 얼굴 역시 온통 굵고 단단한 남자가 되어선, 델리오스가 특유의 낮은 목소리에 웃음기를 실어 고했다. “미안하게도, 그대를 데리러 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어.” 제국의 황제가 되어 돌아온 델리오스는 여전히 보잘 것 없는 떠돌이 점술가의 검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나와 함께 황궁으로 가지. 아일리케.” *** 이대로 모습을 감추고 당신을 떠나서, 가끔 들려오는 소식이나 주워 삼키며, 평생 이름 하나 남기지 않고 고요히 살다가 세상을 떠날 생각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전부, 내 잘못이야.” 한방울 툭 떨어진 눈물이, 곧 쉼 없이 흘러내려 그의 뺨을 축축하게 적셨다. 후회로 일그러진 미간이 고통스럽게 패이고, 불안정한 호흡이 굳게 맺혀 있다가 이윽고 소리가 되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내가 당신의 최악이어도 좋으니까,”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표정의 그가 느리게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였다. “제발, 내게 기회를 줘... 아일리케.”
부엉이가 사냥을 나갈 시간이 되었다. 매는 잠들고 쥐가 움직이는 시간, 훔친 양초에 불을 켠 소녀가 보자기를 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엔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데리러 올 생각이 있었다면 그들은 뭐든 해야 했다. 이렇게 지옥 같은 곳에 넣어 놓고 편지와 선물만 보낼 일이 아니라, 그들은 뭐라도 하면서, 얼굴을 한 번이라도 비치면서 엔제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하는 게 옳았다. 적어도 엔제는 그리 생각했다. “데리러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면 돼.” 엔제는 더는 이 엿 같은 집구석에 있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끝내 길거리를 헤매다 죽더라도 이 집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생각했다. 울렁거리는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엔제는 침대에 앉아 손을 모아 쥐고 간절히 기도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디, 제발, 이번만큼은 소원을 들어달라며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 엔제 데미가르트가 아발란스 저택에서 도망쳤다. 다른 때라면 별것 아니었을 사실이 지금 당장 아발란스에 주는 타격은 상당했다. 추격대가 그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발란스 가문의 사람들은 얼굴에서 근심을 지우지 못했다. 레티나는 끝내 지우지 못한 수치심을 삼키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엔제를 잡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말해 뭘 하니, 당연히 잡아와서 지하실에 가둬야지.” 카테리나는 언제나처럼 다정히 웃고 있었다. 레티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어리광을 부리듯이 종알거렸다. “죽여요.” “뭐…?” “엔제를 죽여 버리자구요.” 엔제가 살아 있게 되면 성가실 것이다. 엔제는 살아 있는한 저항하며 계속 도망치려고 노력할 테고, 레티나는 그 애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자존심에 금이 갈 것이다. 레티나는 불안의 싹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었다. 제 자부심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