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하는 시간
글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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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어머니의 강요로 나가게 된 선 자리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11년 전, 마음속 고이 담아 둔 채은의 첫사랑. 도성하. “난 고채은은 알고 싶은데. 고채은 씨는 아니에요?” 남자 친구의 외도 사실을 이날 알게 됐기 때문일까. 제 첫사랑이었던 그와 보내는 하룻밤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녀답지 않은 기백이 솟았다. 도성하 같은 남자와 하룻밤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실패한 인생에 작은 별표 정도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 날, 집 앞에 새카만 차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렇게 오시니 당황스러워요. 저희는 어젯밤으로 끝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기만할 생각으로 맞선에 나온 건 아니겠지. 아닌 게 맞다면 책임져요.” 도성하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건만, 왜 그의 꼬드김에 자꾸만 넘어가고 싶을까. *** “제가 어린애 같으세요?” “어린애랑 밤을 보낼 리 있나.” 채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멀쩡한 질문에 대한 답을 꼭 그런 식으로 해야겠냐고 따지려는데, 성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채은 씨 어른이에요. 너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못 했어.” 채은은 이런 말을 덤덤하게 하는 성하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고채은에게 그런 남자이길 바라고. 고채은이 도성하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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