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 신기한 것들이 보이는 아이리. 그녀는 얼른 결혼해서 대를 이으라는 닦달에 시달리는 공작, 엘키어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저를 데리고 가서 ‘이 여자가 아니면 결혼 안 하겠습니다!’ 하시는 거예요.” “흐음, 그리고요?” “저는 평민이니까 분명 저를 반대하시겠죠. 헤어지라는 걸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고 돈봉투를 주시지 않을까요?” “그때 돈봉투를 받고 멀리 떠나겠다?” “네. 그럼 공작님은 ‘그 여자 아니면 결혼 안 하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라는 방패를 얻게 되시는 거예요.” 공작님은 더이상 결혼하란 잔소리 안 들어서 좋고, 자신은 할머니 치료비를 마련할 수 있어서 좋고. 아이리는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건강해진 건 전부 네 덕이야.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 병약해서 1년에 360일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던 큰 공녀님도. “아이리 언니, 오늘도 나랑 같이 그림 그리고 놀자!” 낯가림이 심해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는다는 작은 공녀님도. “남은 모든 생은 예비 공작 부인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예비 공작 부인, 저를 할아버지라고 한번 불러봐 주십시오. 어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자아.” 공작 가문을 모시는 최측근 가신 가문의 가주들에. “그래, 내가 졌다. 일단 약혼식부터 올리렴.” 끝내는 공작 대부인까지 이 결혼을 찬성하는데? “큰일 났어요, 공작님! 우리 이러다 진짜로 결혼하게 생겼어요!” “할 수 없죠. 일단 약혼부터 해요.” “네? 뒤, 뒷수습은 어떻게 하려고요?” “나만 믿어요. 원래 결혼보다 약혼이 깨뜨리기 쉽거든.” 정말 믿어도 되나요? 저희 파혼할 수 있는 거 맞나요? 전 그냥 돈 봉투만 받고 싶었던 것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