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달무리
작가리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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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더 눈 돌기 전에.” 유은은 이를 악물었다. 내벽 깊은 곳을 살살 긁어대는 손가락 때문에 눈앞이 다 아찔했다. 찌꺽,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듣기만 해도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그만 빼달라는 말이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기준의 손가락은 더욱 현란하게 내벽을 쑤셔댔다. “하자는 거지? 하자고 지금 이렇게 움찔움찔 물어대는, 응?” “그, 읏, 그게…….” “그래, 실은 나도 못 그만둬. 아래가 터질 지경이거든.” ----------------------------------------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엮이면 안 될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손을 뻗었다. 달리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으니까. “싫으면 울면서 밀어냈겠지. 안 그래?” 집어삼킬 듯 위험하게 번뜩이는 새까만 눈동자. 축축이 젖은 혀와 함께 귓불을 간지럽히는 나른한 음성. 난폭하게 파고드는 남자의 손길은 차마 믿기지 않게 다정했다. “그때 그냥 나가지 그랬어. 갔어야지, 기회줄 때. 왜 안 가고 나랑 엮여.” 유은은 알 수 없었다. 후회해야 하는지. 그럴 틈조차 남자는 결코 주지 않았다.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떨리다 못해 숨이 막혔다. 갇힌 품 안이 너무도 뜨거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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