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어르신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 고은재. 그녀는 원치 않는 유산으로 인해 유족들의 표적이 되고 만다. 상속의 조건은 결혼. “가장 최악의 상황은, 강제로 결혼을 성사시킨 후에 사고로 위장하여 신변에 위해를 가하는 경우인데…….” 이때 변호사가 건네준 연락처. 「주평건설 선우창」 평범한 흰 쪽지가 판도라의 상자처럼 보였다. “혹시, 제가 연락할 걸 알고 계셨나요?” “알고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늦었지만.” “저와 결혼을 해 주셨으면 해요.”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섹스는 해 봤습니까?” 무례하고 무도한 시선. 동물의 눈을 보면 감정을 읽기 어려운 것처럼 그의 눈도 그랬다. “내가 무섭습니까?” “……왜 그런 걸 물으세요?” “도망치고 싶은 얼굴이라.” 그는 구원자일까, 무뢰한일까. 주어진 시간 363일. 부디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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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요.” 말에 담긴 진심을 믿기 위해서는 그 주체를 믿어야만 했다. 여자는 민철을 믿고 있음을, 믿음에 대한 고백이 문장에 국한된 겉치레가 아님을 썩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는 여자의 믿음을 얻었다. 이제부터는 그것이 얼마나 견고한지 확인할 차례였다. 그래야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민철, 그 자신이 그러했듯이. 민철은 그녀에게 자신이 완벽히 각인되는 순간을 상상했다. 상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의 손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여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달콤했으므로.
나는 팔려 가지 않기 위해 나를 팔았다. 어차피 똑같은 결말 아니냐고 하겠지만, 생산자와 소매는 엄연히 다르다. 내가 팔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수수료를 떼일 필요가 없었다. 부유한 노인. 그 후계를 위한 인공수정. 대가는 10억. “곧 계약금이 지급될 겁니다.” 이거다 싶었다.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이. 그리고 얼마 후. “기어이 이 짓을 하셨네. 미친 노인네가 진짜.” “…….” “얼마 받았습니까?” 처음 보는 장신의 남자. 한밤중 난입한 그로 인해 내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선배는 너무 착해요.” “갑자기?” “저는 연애하기에 적당히 나쁜 사람이 좋거든요.” 동주는 시야를 맑게 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똑바로 떴다. 잘생긴 온건이 더 잘 보였다. 하여튼 쓸데없이 잘생긴 건 이래서 안 좋았다. “그런데 친해지고 싶어요.” 온건은 여우다. 동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은근하게 주어를 생략하는 것도 그렇고 예쁘게 눈을 맞춘 상태에서 말하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끝내고 싶을 때 귀찮게 안 할게요.” 적당히 나쁜 사람과의 적당히 나쁜 연애. 놀고 싶으면 그의 손을 잡으면 된다. 하…… 고달픈 인생.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
나는 미친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아주 더럽게. 서른하나는 그런 나이다. 적나라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할 줄 알고, 그가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어도 결혼 상대자가 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는 나이. 스물다섯일 때 나는 집에서 독립했다고, 스스로 돈을 번다고 내가 어른인 줄 착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스물다섯은 너무 어렸다. 그럼 서른하나는 어른인가? 아니다. 서른둘이 되고, 서른셋이 되고, 서른다섯을 넘기면 서른하나도 어렸다고 회상할 것이다. 그에게 복수할 마음을 먹은 것 자체만으로도 어렸다는 증거는 충분할 터였다. 그러나 스물다섯의 내가 그랬듯, 서른하나의 나도 내가 어리다 생각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나이를 먹은 후에 깨달을 시간의 형벌이었다. 시간이 지나야만 찾아오는 형벌. 사람들은 그것을 ‘후회’라고 부른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강하게 끌렸던 강범영과 김의진의 첫 만남, 그리고 현재. ‘뜨거운 안녕’, 그 시작에 관한 이야기. 12월 24일.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1년 중 가장 불행한 날. - 제가 돌려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받은 사람이 원치 않으니까요.” - 정 그러시다면, 직접 돌려받겠습니다. 예민한 본능이 위험을 알려 왔다. 하지만 뱉은 말을 주워 담기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오셨습니까.” 온 신경을 사로잡는 목소리. 그에게는 잘생겼다는 말로는 부족한 남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왜 안 받으세요?” “생각 중이었습니다. 당신의 목적이 정말 이것뿐인가.” “…….” “식사, 하셨습니까.” 그것은 덫이었다. 향기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덫. 이건 우연일까, 운명일까. 교묘한 미소 뒤에 가려진 그것의 형체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미친 짓을 한번 해 볼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