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척 없는 탑
작가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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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도서는 개인지로 출간되었던 것을 전자책으로 재출간한 작품이며, 문장과 표현의 수정 작업을 진행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북국 마로. 즉위한 지 4년이 된 젊은 왕 렌은 왕자 시절 대귀족가의 음모로 요정족인 모친을 잃고 고압적인 치세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왕의 국혼을 통해 대귀족가가 다시금 세력을 일으키려 하자, 렌은 그들을 누르려는 방편으로 4년 전 왕비 시해 사건에 휘말려 고문당한 뒤 탑에 유폐당한 제1후궁을 떠올린다. 스우. 성(姓)도 없이 바람을 닮은 허망한 발음 하나로 기억되는 왕의 첫 번째 손님. 그렇게 궁으로 불려 온 스우는 성장이 멈춘 채 벙어리가 되어 있었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 병약한 후궁에게 렌은 예상치 못한 흥미를 느끼며 빠져든다. *** 렌은 비릿하게 웃으며 스우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쉼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달게 혀로 핥았다. 어린 남자가 많이도 놀랐다. 앞으로는 더더욱 놀랄 일이 많을 것이다. “울지만 말고 좀 더 좋은 얼굴을 해야지.” 젖은 뺨을 만지는 손끝과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깃털처럼 부드러웠다. 흐트러진 옷을 바로잡고 여밈을 묶으며 렌은 재차 속삭였다. “겁에 질린 얼굴만 해서 될 직책이 아니잖나.” 그 말에는 더 큰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렌은 욕망을 감춘 손길로 스우를 안아 놀란 등을 다독였다. “뭐.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지, 천천히.” 아예 빈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천천히가 스우보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지게 될 것임은 확실했다. 몸도 마음도 연약한 남자를 잘 거둬 먹이고 다독인 뒤 늦지 않게 벗겨 먹을 작정이었다. 손에 쥔 것을 누리는 건 제게 당연한 일. “울지 마.”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해 온 그 어떤 일보다 파렴치한 짓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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