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빙의 3년차. 카페 사장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도중 여주의 아버지가 될 소년을 주웠다. 훌륭하게 키워서 제 짝 찾으라고 밖으로 던져 놨건만. “너…… 왜 왔니?” 녀석이 돌아왔다. 여주가 태어나야 할 바로 그 해에! “결혼은?” “제가 미쳤다고 누님을 두고.” 십 수 년 뒤 이 세상은 흑막의 손에 무너질 예정. 그렇게 되면 애써 일궈 놓은 내 카페도 끝장이다. 흑막을 물리칠 수 있는 건 이 소설의 여자주인공인 성녀 코렐리아, 단 한 명뿐. 근데 그 애비 될 자가 결혼을 거부한다. *** “야, 너 당장 나가.” “싫습니다.” “그럼 여기서 식 올릴래? 내가 좋은 여성분으로 잘 물색해 볼게.” “싫어요, 누님.” 체이트가 손을 뻗어 내 뒷머리를 감싸 올렸다. 귓가로 뜨거운 숨이 훅 끼쳤다. “저는 이대로 결혼하지 않고 누님과 평생 함께 살 겁니다.”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 말미에 간질간질한 웃음기가 느껴졌다. “그게 정 싫으시면, 누님께서 낳아 주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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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소설 주인공으로 빙의해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천하제일검이 됐건만, 종막을 코앞에 두고 냅다 서양풍 로판 속에 갇혀버렸다. 이번엔 주인공도 아니고 삼류 악당 가문의 병약한 엑스트라 역이다. 심지어 이 몸, 개복치다. 앉아도 피 토하고 일어서도 피 토하고 숨만 쉬어도 피 토한다. 대체 곱게 자란 여자애 몸뚱이가 왜 이따위야? 그런데 어째 증상들이 낯익은데. 이거 혹시. “절맥증?” 낯선 세계에서 익숙한 무협의 냄새가 난다. *** 절맥의 치료를 위해선 이 서양풍 세계관 속에서 양기를 주입받아야 하는데, 간신히 찾아낸 극양지체가 하필이면 흑막 대공가의 문제아였다. “당신 몸에서 날뛰는 그 기운, 저한테 줘요.” “싫은데.” “어?” “내 거잖아. 주기 싫어.” 이 가문, 내가 살려야 하는데…… 이놈을 어떻게 구워삶지?
무협 소설 주인공으로 빙의해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천하제일검이 됐건만, 종막을 코앞에 두고 냅다 서양풍 로판 속에 갇혀버렸다. 이번엔 주인공도 아니고 삼류 악당 가문의 병약한 엑스트라 역이다. 심지어 이 몸, 개복치다. 앉아도 피 토하고 일어서도 피 토하고 숨만 쉬어도 피 토한다. 대체 곱게 자란 여자애 몸뚱이가 왜 이따위야? 그런데 어째 증상들이 낯익은데. 이거 혹시. “절맥증?” 낯선 세계에서 익숙한 무협의 냄새가 난다. *** 절맥의 치료를 위해선 이 서양풍 세계관 속에서 양기를 주입받아야 하는데, 간신히 찾아낸 극양지체가 하필이면 흑막 대공가의 문제아였다. “당신 몸에서 날뛰는 그 기운, 저한테 줘요.” “싫은데.” “어?” “내 거잖아. 주기 싫어.” 이 가문, 내가 살려야 하는데…… 이놈을 어떻게 구워삶지?
남편이 죽었다. 어차피 사랑 없는 결혼이니 슬픔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내 모든 것을 앗아간 이상, 되돌려야만 했다. 긴 시간 인내가 답이라고 여기고 살아 왔으나 더는 참지 않겠다.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식을 버린 두 가문에게 복수하고, 온당하게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을 누릴 것이다. ‘내 손에 없다면 쟁취하면 그만인 것을.’ 그녀는 이번 생, 복수를 위한 약탈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 모든 건 목표를 향한 계획의 일환에 불과했다. 그 과정에 사랑은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당장에 네 허리를 끌어안고 입 맞추고 싶어 돌아버릴 것 같아.” “…….” “인정하지. 네가 이겼다, 시실리아.” “…….” “그러니 승자답게 전리품을 취해.” 씨근덕거리는 숨소리. 거친 말투. 붉게 상기된 뺨. 모든 게 전과 달랐다. ‘내게 그토록 무심했으면서, 대체 왜 지금 이러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