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임신 계약
글문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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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낳아줘야겠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시은의 머리카락에서 흥건한 빗물이 몸을 타고 질질 흘러내렸다. 새하얀 블라우스가 엉망으로 젖어 들었다. 와이퍼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시야가 또렷해졌다가는 거센 비바람 때문에 또다시 눈앞이 흐릿해졌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유준이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아있는 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운 어조였다. 4년 만에 만난 사람에게 들을 법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룸미러로 보이는 그의 시선조차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시은은 아직도 눈앞에 정유준 사장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비천한 자신을 찾기 위해 그가 직접 부산까지 내려왔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시은의 입술이 달달 떨렸다. 그녀는 초조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거센 비바람에 옷이 젖어 한기가 들었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올랐다. “내 아이를 낳아줄 여자가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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