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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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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내리는 비 때문에 날이 우중충했다. 한낮인데도 사무실에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이 깔렸다. 과거와 현재가 섞이는 것 같은 무게감에 몸도 마음도 무거워지는……. 혼자 떠나야 하는 주말, 그것도 지방 출장을 앞두고 바보같이 발목을 접질렸다. 상사의 지시로 함께 출장 떠나게 된 후배는 효진에겐 무척이나 껄끄러운 존재였다. “갑작스러운 부탁인데… 고마워, 신재 씨.” “…아닙니다.” “주말에 약속은 없었어?”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하고 싶으면 답하고, 하기 싫은 말은 답하지 않았다. 고집이 세다. 나이도 어린데 참 제멋대로야. 정말 싫다고 나도. 너랑 억지로 말을 잇는 거. 그녀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텐데, 직장 동료이니 하는 수 없었다. 무시당하는 입장이 가히 좋지는 않지만, 적당히 넘어가 어린놈의 비위에 맞춰주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사람과 관계를 가지려는 사람들의 습성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시간에…. 많이 가까우신가 봐요.” “누가 걱정하겠네요.” 이상하게도 그와의 출장 이후, 신경 줄을 계속 갉아대는 말들이 혼자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효진을 자극해 오기 시작한다. *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고개를 든 순간 효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금색 벽체 사이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자, 효진은 조용히 굳은 채 숨을 삼켰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좁은 공간 안에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봤다. 권신재. 그러나 수 초간의 혼란은 무용했다. 그는 분명 권신재였다. 가늘어진 눈을 뜬 채 그도 효진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으니까. 서로 다른 이와 함께 탄 호텔 엘리베이터. 효진은 그제야 알았다. 냉담한 후배의 오만한 머릿속에 무슨 거지 같은 생각이 박혀 있었는지. “권신재, 너도 꼰대 같아. 잘난 척하고 오만하고. 다른 사람 깔보고.” 그런데 그날 밤 이후, 자신을 혐오하던 시선이 어딘지 미묘하게 달라졌다. “과장님. 남자 친구 있어요?” “없는 거죠?” 불꽃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번지는 듯한 느낌. 그건 태어나 처음 겪는 발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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