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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김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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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꽃이었다. 아이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곱고 투명한 목소리였다. “엄마가 죽어서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분수는 봄의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올랐다가 다시 떨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힘. 물이 다시 내려앉을 때마다 사방으로 물방울들이 튀었다. 저녁노을에 비친 아이의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이 살랑였고 입고 있던 티셔츠의 어깨 부분에 미세한 물 자국들이 차올랐다. 나는 손을 뻗어 아이의 옆얼굴을 가렸다. “밥 먹으러 갈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에게 팔을 벌렸다. 아이는 내 팔을 거절한 채 스스로 몸을 일으켰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남자는 모를 것이다. 우리의 모든 변화는 한 송이 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완결 여부미완결
에피소드1 권
연령 등급성인

세부 정보

팬덤 지표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10.12%

👥

평균 이용자 수 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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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플랫폼 평점

8.6

📊 플랫폼 별 순위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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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어쩌면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나는 마음이 흔들릴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애런. 네가 말했지. 죽지 않았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애런. 다시 한번 괜찮을 거라고 말해줘. 언젠가 이 긴 잠에서 깨고 나면 굶주림과 포식자의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남기 위해 잠을 자는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그때가 되면 우리는 다시 생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 이 긴 잠의 끝에서 세상과 맞서고 결국은 모든 것을 이겨 낼 거라고. [삶이 멈추는 순간에야 시작되는 깊은 잠. 누군가와 이별했기에 또 다른 누군가와도 작별해야 했지만 결국은 미수로 그치고 말았던 그 헤어짐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삶을 건져 올려 준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에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계절을 이겨 내고 핀 꽃들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의 가게에서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가 세상 밖으로 갑자기 끌려 나온 꽃들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먼발치에서도 향기가 물씬 났다. 다니는 애런에게 다가가 물었다. “웬 꽃이야?” “샀어.” 애런의 대답은 간단했다. 꽃에 얽혀 있는 어떠한 이야기도 없었고 이 꽃의 목적지가 어딘지에 대한 답도 없었다. 다니는 다시 물었다. “왜 샀어?” 애런이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겼다. 잘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흐트러졌다. 애런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네가 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고 싶어서.” 온 마음이 순식간에 기쁨으로 물들었다. 이 꽃들의 주인이 자신이었다니. 애런이 꽃을 들고 들어올 때부터 조금은 기대했던가. 얼굴에 티가 나지는 않았을까. 나는 꽃을 좋아한다고 답해 주고 싶었다. 다니는 손을 내밀어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 겨울잠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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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고양이

여름. 아빠는 사라졌고 나는 낯선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스물여덟, 정말이지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때마침 위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인 침실 바로 밑이 내 방인 걸 알면서도 매일 여자를 데려와서 뒹군단 말이지. 생각해 보니까 일부러 나 엿 먹으라고 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음이 든 바스켓을 질질 끌고 2층으로 올라 방문을 벌컥 열었다. “오빠! 내가 집에 여자 데리고 오지 말랬지!” 어두운 방 안에는 예상했던 대로 두 사람이 엉켜 있었다. 둘 다 대강 반쯤 헐벗고 있던 것 같았지만 잔뜩 분노한 층간 소음 피해자의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대로 침실 중간까지 대차게 걸어 들어가는데, 잠깐. 생각해 보니 저 여자는 무슨 죄야? 물론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죄라면 죄겠지만 그게 섹스하려다가 물벼락까지 맞을 죄인가? 결국은 손을 멈췄다. “오 초 드립니다. 여자분은 비키세요.” 잠시 굳어 있던 여자는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나는 그 길로 침대에 누워 있던 다른 누군가를 향해 시원하게 얼음물을 쏟아 버렸다. 계절에 맞지 않게 서늘하다고 생각되던 날씨였다. 하지만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하는 길에서 문득 깨달았다. 약간 덥네. 한재민의 침대 위에 있던 얼음 조각들은 모두 녹아내렸을 것이다. 우습게도 그와 나의 열을 식히려 했던 그 날부터 비로소 여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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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아빠는 사라졌고 나는 낯선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스물여덟, 정말이지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때마침 위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인 침실 바로 밑이 내 방인 걸 알면서도 매일 여자를 데려와서 뒹군단 말이지. 생각해 보니까 일부러 나 엿 먹으라고 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음이 든 바스켓을 질질 끌고 2층으로 올라 방문을 벌컥 열었다. “오빠! 내가 집에 여자 데리고 오지 말랬지!” 어두운 방 안에는 예상했던 대로 두 사람이 엉켜 있었다. 둘 다 대강 반쯤 헐벗고 있던 것 같았지만 잔뜩 분노한 층간 소음 피해자의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대로 침실 중간까지 대차게 걸어 들어가는데, 잠깐. 생각해 보니 저 여자는 무슨 죄야? 물론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죄라면 죄겠지만 그게 섹스하려다가 물벼락까지 맞을 죄인가? 결국은 손을 멈췄다. “오 초 드립니다. 여자분은 비키세요.” 잠시 굳어 있던 여자는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나는 그 길로 침대에 누워 있던 다른 누군가를 향해 시원하게 얼음물을 쏟아 버렸다. 계절에 맞지 않게 서늘하다고 생각되던 날씨였다. 하지만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하는 길에서 문득 깨달았다. 약간 덥네. 한재민의 침대 위에 있던 얼음 조각들은 모두 녹아내렸을 것이다. 우습게도 그와 나의 열을 식히려 했던 그 날부터 비로소 여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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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꽃

그러니까, 꽃이었다. 아이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곱고 투명한 목소리였다. “엄마가 죽어서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분수는 봄의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올랐다가 다시 떨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힘. 물이 다시 내려앉을 때마다 사방으로 물방울들이 튀었다. 저녁노을에 비친 아이의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이 살랑였고 입고 있던 티셔츠의 어깨 부분에 미세한 물 자국들이 차올랐다. 나는 손을 뻗어 아이의 옆얼굴을 가렸다. “밥 먹으러 갈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에게 팔을 벌렸다. 아이는 내 팔을 거절한 채 스스로 몸을 일으켰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남자는 모를 것이다. 우리의 모든 변화는 한 송이 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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