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함부로 그리움이 번지고 사랑이 피어나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일들.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홍은동에 집을 산 건 다분히 충동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만큼 남자는 무료했고, 때마침 마주한 서은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다. ‘오랜만이네.’ ‘…….’ ‘기억 안 나는 건가?’ 오만하고 도도했던 여자는 눈빛마저 침착하고 단정하였는데, 주혁은 여전히 그 모습을 흐트러뜨리고 싶었다. 특유의 청명하고 시원한 남자의 웃음이 떠오른다. 이어 서은의 번호를 묻고 갖고 하는 말들도 떠올린다. ‘나랑 사귈래?’ 서은은 픽 웃었다. 그날, 홍은동에서 남자와의 대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삶이 화려하여 인생이 심심한 것처럼 굴던 남자. 서은의 사소한 무언가가 남자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어 남자의 흥미가 동했을 뿐. 그러니 남자는 곧 서은도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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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함부로 그리움이 번지고 사랑이 피어나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일들.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홍은동에 집을 산 건 다분히 충동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만큼 남자는 무료했고, 때마침 마주한 서은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다. ‘오랜만이네.’ ‘…….’ ‘기억 안 나는 건가?’ 오만하고 도도했던 여자는 눈빛마저 침착하고 단정하였는데, 주혁은 여전히 그 모습을 흐트러뜨리고 싶었다. 특유의 청명하고 시원한 남자의 웃음이 떠오른다. 이어 서은의 번호를 묻고 갖고 하는 말들도 떠올린다. ‘나랑 사귈래?’ 서은은 픽 웃었다. 그날, 홍은동에서 남자와의 대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삶이 화려하여 인생이 심심한 것처럼 굴던 남자. 서은의 사소한 무언가가 남자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어 남자의 흥미가 동했을 뿐. 그러니 남자는 곧 서은도 잊을 것이다.
남자가 또 웃었다. “자신하지 말지.” 하지만 이번의 웃음은 건조했다. “그러면 꼭 한번 그 취향 꺾어 보고 싶어지는데.” “왜, 제 애인이라도 되시게요?” 그 웃음이 은조는 불쾌했다. 대답조차 하지 않는 남자의 오만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비웃는 남자의 태도가 자꾸만 은조를 불쾌하게 했다. “애인은 됐고.” 남자의 눈이 느리게 은조를 훑었다. 고작 그뿐인데 왜인지 은조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주먹을 쥐고 꿋꿋이 견뎠다. “잠깐 놀아 줄 수는 있는데.” “…….” “어떻게, 한번 놀래?” 한없이 가벼운 투. 목구멍 아래 깊은 곳이 들끓는다. 수치심인가. 모멸감인가.
“나 지쳤어. 그만하고 싶어, 이제.” 비스듬 도욱이 고개를 비틀었다. 미묘히 짙은 눈썹을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너랑 나 십오 년을 함께했고 사귄 지는 팔 년이잖아.” “겨우 팔 년.” “그래, 팔 년씩이나.” 도욱의 눈이 무섭도록 가라앉는다. 그 눈을 하고 “준희야.” 다정히 준희를 불렀다. “내가 오늘 술 취해서 삐졌구나. 술에 절은 채로 밤늦게 불러내서 화났어? 안 그럴게. 존나 말 잘 들을게. 좀 봐줘. 네가 연락을 안 하잖아. 기다리면 한다 해 놓고 존나 안 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속이 상하겠어, 안 상하겠어.” “네 옆에 있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아. 설레지 않고.” “…….” 그가 준희를 직시하며 피우던 담배를 창틀에 지져 껐다. 신경질스러운 손짓이었다. 이어 목덜미를 채운 셔츠의 단추가 갑갑하다는 듯 사납게 네크라인의 옷깃을 끌어 내렸다. 다시 준희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준희 역시 맞서듯 그 눈을 올려보았다. 도욱이 피식, 입매를 비틀었다. “이럴 거면 카섹스나 할 걸 그랬어.” 낮고 깊은 웃음이 목덜미를 스쳤다.
“형, 내 과외 선생님이셔.” 저녁 식사 시간, 신우가 남자에게 연을 소개했다. 남자의 시선이 연에게 닿았다. 그때까지 남자에게 감정 없는 사물에 불과했던 연은 그제야 사람이 된다. “아, 선생님.” 무심히 말하며 남자는 물 잔을 들었다. 물을 마시고 그 안에 곱게 갈린 얼음들을 아작아작 깨물어 씹었다. 남자의 검은 눈이 다시 연의 얼굴을 움켜쥔다. 찰나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공간의 무게가 선명해지는 착각이 일었다. 사과를 할 거라 생각했다. 아까 가정부로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네 할 일이 아닌 것들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남자가 탁, 물 잔을 놓았다. “반반하네.” 연이 뒤집어쓴 건 무례한 말일진대 연은 별안간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되었다. 온몸이 서늘하고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기분. 불쾌했다.
“나 지쳤어. 그만하고 싶어, 이제.” 비스듬 도욱이 고개를 비틀었다. 미묘히 짙은 눈썹을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너랑 나 십오 년을 함께했고 사귄 지는 팔 년이잖아.” “겨우 팔 년.” “그래, 팔 년씩이나.” 도욱의 눈이 무섭도록 가라앉는다. 그 눈을 하고 “준희야.” 다정히 준희를 불렀다. “내가 오늘 술 취해서 삐졌구나. 술에 절은 채로 밤늦게 불러내서 화났어? 안 그럴게. 존나 말 잘 들을게. 좀 봐줘. 네가 연락을 안 하잖아. 기다리면 한다 해 놓고 존나 안 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속이 상하겠어, 안 상하겠어.” “네 옆에 있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아. 설레지 않고.” “…….” 그가 준희를 직시하며 피우던 담배를 창틀에 지져 껐다. 신경질스러운 손짓이었다. 이어 목덜미를 채운 셔츠의 단추가 갑갑하다는 듯 사납게 네크라인의 옷깃을 끌어 내렸다. 다시 준희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준희 역시 맞서듯 그 눈을 올려보았다. 도욱이 피식, 입매를 비틀었다. “이럴 거면 카섹스나 할 걸 그랬어.” 낮고 깊은 웃음이 목덜미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