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킬러(Painkillers)
작가마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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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재 자체가 잊힌 것만 같던, 경영대의 구석진 강의실. 혼자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 무감한 얼굴의 남자는 은오와 눈을 맞춘 채 느리게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았다. 길게 빨아들인 담배 끝이 붉게 타들어 갔다. 어두운 실내에서 붉은빛은 한층 짙고 선명했다. 남자를 보며 은오는 생각했다. 참 맛있게 빨고, 참 시원하게 뱉는다고. 연기가 무척, 달아 보인다고. “줄까?”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빗소리를 갈랐다. 여자를 향한 질문은, 무료한 와중에 든 가벼운 충동이었다. 저런 순진한 얼굴로는 어떤 대답을 하고 어떻게 반응하려나, 약간의 호기심이 곁들여진 가볍디가벼운 충동. “늘 여기서 피워요?” “피우면?” “다시 와 보게요.” 불청객이라 생각했던 남자는, 절박한 순간 은오가 내민 손을 잡아 주었다. 길어야 겨우 3개월, 겁도 없이, 무언의 합의하에 시작된 관계였다. 쓸데없이 애틋했던 순간이 그 끝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 눈앞에 펼쳐진 4장의 사진, 그중에서 망설임 없이 집어 든 사진 한 장. 함께했던 시간은 여전히 적당한 이름을 붙일 수 없고, 문득 떠오를 때면 아직도 씁쓸한 저릿함을 남기지만. 그래 봤자 한때의 유희였던 여자. 여자의 자리는 늘 기억의 한구석이라 치부했는데. 네가 여기서 나오면 안 되는 거지. 내가 딴 맘을 먹고 싶어지잖아. “오랜만이네, 이은오. 우리, 한번 볼까?” “불장난은 어려서 한때로 끝내는 거예요. 이렇게 결혼으로 억지로 끌고 갈 게 아니라. 왜냐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꼭, 탈이 나니까.” “불이 붙긴 붙었었다는 말이네? 이런 건 나랑만 해. 이 결혼 하자, 은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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