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공주를 위하여
작가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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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소은 씨.” 소은은 뒷걸음질 치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줘야 했다. 분명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본능은 그에게서 도망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제가 한소은 씨 팬이라.” 재하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왠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보였다면, 그건 소은의 착각이었을까. 괜스레 이상한 감정이 솟구쳤다. “근데 비상구라, 한소은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온더록스도 아닌 스트레이트로 마시면서 재하는 굳이 잔을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꼭 나한테서 탈출이라도 하려는 것 같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의 투명한 유리 벽은 온통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거기에 비친 재하의 눈빛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의 얼굴엔 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혹시… 전에 어디서 뵌 적 있나요?” 위스키 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그의 행동이 우뚝 멈췄다. “계속 생각해 봤는데, 죄송하지만 낯이 익어서요.”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집요한 시선에 소은은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내내 저한테 뭔가, 화가 나 있으신 것 같아서요.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도.” “정말 한소은 씨가 20년 경력을 내세울 거라면 내 눈빛이 화가 났다기보다는….” 소은의 말을 자르며 조용하게 이어지는 재하의 목소리는 직전과는 달리 약간 잠겨 있었다. “당장 그 고상한 원피스 따윈 찢어 버리고 네 예쁜 다리를 벌려서 사정없이 박고 싶다.” 소은의 눈이 커졌다. 어둑한 조명 아래 재하는 아까보다 더 농도 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는 사인으로 읽었어야 하는데. 못 읽었다면, 당장 연기 레슨부터 시급한 거 아닌가?” 소은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거란 사실을 알았다. 미처 립스틱을 덧바르지 못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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