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만지면 떨리지 않습니까?” 손목 안쪽을 지분거리는 손길에 자꾸만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분명 저 손길 아래로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질 텐데……. 그의 짓궂은 질문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떨릴 텐데.” 나른한 목소리가 귓불을 뜨겁게 달군다. “키스해도 됩니까?” “미쳤어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놀란 얼굴이 드디어 그를 마주했다. 단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씨익 웃은 한영이 같은 질문을 다르게 바꿔 속삭였다. “키스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지 궁금해서.”
2020년 06월 07일
9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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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거 없으면 예쁘게 커서 시집이나 오든지.’ “예쁘게 큰 거 같으니까 이제 시집와야지.” “……재밌어요?” “아니, 엄청나게 재밌는데.” 이 인간이……! 힘껏 날린 주먹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 떨어진다. 제자리로 돌아간 그는 언제 가까웠냐는 듯 다시 우아한 자태로 돌아갔다. 긴 다리를 꼬고 찻잔을 쥔 재이의 손은 참 고왔다. 툭, 한 번씩 닿을 때마다 느낀 그의 손은 부드럽고 뜨거웠다. “너무 매몰차게 거절부터 하지 말고 며칠 잘 생각해봐.” 다정한 듯 제 의견을 존중해주는 듯하지만. “물론, 결론은 결혼 하나밖에 없겠지만.” 본인 의견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꼭 이다경과 결혼을 하고 싶거든.” (15세 개정판)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같이 나가 줄까요?” 하이에나들처럼 팀장실의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을 팀원들이 걱정이긴 했지만, 우연은 괜찮다며 문고리를 잡았다. “잠깐만요.” 걸음이 멈추고 문고리를 반쯤 내린 손마저 멈춰 버렸다. 닿았다. 뭐가? 입술이. 어디에……? “흐음. 이 정도면 확실한가?” 분명 온기가 전해졌다. 귓불과 와이셔츠 깃 사이 어딘가에.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진정이 되지 않았다. 쿵쿵쿵 뛰는 심장박동이 분명 노을에게도 고스란히 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입술이 닿았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다. “좀 번지는 게 좋으려나? 어떻게 생각해요?” “그, 그렇게 생각합니다.” “으응?” “네?” 아주 잠깐이지만 마주친 시선을 휙 피하는 우연을 본 노을의 눈매가 가늘게 변한다. 그리고 목덜미와 깃 사이 어설프게 찍힌 립스틱 자국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짓이겼다. 꾹 눌러 번지게 하고서야 마음에 든 모양인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노을이다. “이제 나가봐도 될 것 같아요.” “……이대로?” “응, 그대로.” “왜, 이건 조금.” “이래야 확실하죠. 아니면 입술에 해줄까요?”
“나는 그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팩트로 만들고 싶은데.” 언젠간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홀로 숨어 설레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엔 너를 대하는 내 마음이 사랑이라는데, 네가 보기엔 어때?” “…….” “네가 보기에도 너를 대하는 내 마음이 사랑 같아?” 애써 외면하고 제 마음마저 밟고 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고백인지 우리의 서사인지 모를 질문에 숨이 막혀왔다. “네가 남자랑 있단 말에 미친놈처럼 달려온 거 보면 답은 이미 나온 거 같지만.”
“나는 그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팩트로 만들고 싶은데.” 언젠간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홀로 숨어 설레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엔 너를 대하는 내 마음이 사랑이라는데, 네가 보기엔 어때?” “…….” “네가 보기에도 너를 대하는 내 마음이 사랑 같아?” 애써 외면하고 제 마음마저 밟고 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고백인지 우리의 서사인지 모를 질문에 숨이 막혀왔다. “네가 남자랑 있단 말에 미친놈처럼 달려온 거 보면 답은 이미 나온 거 같지만.”
부끄러워 말을 더듬고 얼굴을 붉힌다. 손을 떼고 싶어도 뗄 수 없게 자꾸만 더 많은 욕심이 들게. “십 년이야. 자그마치 십 년을 기다렸어.” “……서도하 씨.” “그딴 식으로 불러도 소용없어. 나는 너 못 놔. 네가 날 그렇게 만들었어.” 언제였더라. 뻔뻔하게 받으라던 그 이야기의 끝이 어쩌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날. 우리 마음은 이미 닿았던 거다.
그를 따라 들어간 상영관은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 영화가 아니었다. “기억 안 나.” 놀릴 목적으로 추궁하는 것조차 민망할 만큼 이시호는 당당했다. “영화 관심 없어. 영화관도 너랑 첫 데이트때 처음 간 거라고 말했잖아.” “그럼 도대체 왜 재미있겠다고 했어요?” “네가 좋아하니까.” 달콤한 카라멜 팝콘 한 알을 집어 든 손이 제 입술로 다가왔다. 자연스레 벌어진 틈을 벌리고 들어온 달콤한 향에도 이시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도 좋아해 보려고 노력 중이야.” “…….” “그러니까 선의의 거짓말 정도는 눈치껏 넘어가 줍시다, 백은설 씨.”
“선택해.” 도망갈 틈도 없이 다가와 너른 품에 자신을 가둬놓고 인제와 선심 쓰듯 의견을 묻고 있었다. “이대로 나갈 건지.” “…….” “이대로 안길 건지.” 속살거리며 다가오는 입술을 피하지 못했다. “어떡할래, 이다정.” 잘근 아랫입술을 깨무는 야릇한 통증에 벌어진 틈으로 뜨거운 숨이 차올랐다.
권태이에게 정하나는, “안녕, 고모님.” 한참 어린 삼촌의 부탁으로 돌보게 된 짐 덩어리였다. “저도 부르려고요. 좆 까님이라고.” 어른 무서운 줄 모르는 시건방진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필요로 인해 지켜봤고 쓰임이 있기에 곁에 뒀다. 모든 일과를 마쳤을 때에서야 생각이 나는 아이. 지루할 땐 메시지를 보내고 여유로울 땐 전화를 걸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갔고 마주하고 있으면 즐거웠다. “나 좋아해요?” “아니. 관심은 있어.” 깨달음은 빨랐지만, 인정은 느렸다. “관심도 없는데 내 의지로 이 짓거리 하고 있는 거면 그건 그냥 호구 새끼지.” 그 모든 게 정하나 한정 호구 새끼가 되기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난 아이 낳을 생각 없습니다.” “…….”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할 테지만, 이은우 씨와 내 사이에 아이는 없어야 한단 뜻입니다.” 정태건은 돈 많고, 외형도 훌륭하고, 머리숱도 많은 훌륭한 남편감이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낳은 아이는 예쁠지도 모르죠. 내 아이 예뻐하고 싶다고 아이 낳을 생각은 없지만요.” 이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까지 늘어지고 싶진 않았지만, 아이 정도야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 마음 변치 않아야 할 겁니다.” “변하면요?” 애초에 완벽한 결혼 생활을 바라지 않았다. 적당히. 뭐든 적당한 게 가장 좋은 거니까. “여자 마음은 갈대라잖아요. 정태건 씨가 너무 좋아져서 우리 둘 닮은 아이라도 낳고 싶어지면 어떡하실 거냐고요.” 하지만 답을 듣지 못하고 끝맺어야 했던 질문이 저에게 돌아온 건,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왜 두 줄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들어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그럼에도 두 줄이다. 흐릿하긴 하지만 분명 두 줄이 나타나 있었다. 어떡해. 나 어떡해야 해……? (15금 개정판)
“보고 싶다고 징징거리더니 인제 와서 모르는 척?” 그의 말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자신이 그런 말을 그에게 한 건 맞다. 그렇지만……! “할 말이 매우 많아 보이는데 어서 해 봐요.” 도망갈까? 일단 이 상황을 피한 뒤에 머리를 싸매보면 뭔가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민 대리님.” “네? 네, 팀장님.” “그 작은 머리 굴려봤자 답은 뻔하지. 도망갈 궁리 그만 해요, 숨만 차. 응?” 웃는다, 또. 간 떨려 죽을 거 같으니까, 제발 좀 그렇게 웃지 마세요. 팀장님.
“난 아이 낳을 생각 없습니다.” “…….”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할 테지만, 이은우 씨와 내 사이에 아이는 없어야 한단 뜻입니다.” 정태건은 돈 많고, 외형도 훌륭하고, 머리숱도 많은 훌륭한 남편감이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낳은 아이는 예쁠지도 모르죠. 내 아이 예뻐하고 싶다고 아이 낳을 생각은 없지만요.” 이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까지 늘어지고 싶진 않았지만, 아이 정도야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 마음 변치 않아야 할 겁니다.” “변하면요?” 애초에 완벽한 결혼 생활을 바라지 않았다. 적당히. 뭐든 적당한 게 가장 좋은 거니까. “여자 마음은 갈대라잖아요. 정태건 씨가 너무 좋아져서 우리 둘 닮은 아이라도 낳고 싶어지면 어떡하실 거냐고요.” 하지만 답을 듣지 못하고 끝맺어야 했던 질문이 저에게 돌아온 건,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왜 두 줄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들어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그럼에도 두 줄이다. 흐릿하긴 하지만 분명 두 줄이 나타나 있었다. 어떡해. 나 어떡해야 해……?
“난 아이 낳을 생각 없습니다.” “…….”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할 테지만, 이은우 씨와 내 사이에 아이는 없어야 한단 뜻입니다.” 정태건은 돈 많고, 외형도 훌륭하고, 머리숱도 많은 훌륭한 남편감이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낳은 아이는 예쁠지도 모르죠. 내 아이 예뻐하고 싶다고 아이 낳을 생각은 없지만요.” 이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까지 늘어지고 싶진 않았지만, 아이 정도야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 마음 변치 않아야 할 겁니다.” “변하면요?” 애초에 완벽한 결혼 생활을 바라지 않았다. 적당히. 뭐든 적당한 게 가장 좋은 거니까. “여자 마음은 갈대라잖아요. 정태건 씨가 너무 좋아져서 우리 둘 닮은 아이라도 낳고 싶어지면 어떡하실 거냐고요.” 하지만 답을 듣지 못하고 끝맺어야 했던 질문이 저에게 돌아온 건,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왜 두 줄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들어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그럼에도 두 줄이다. 흐릿하긴 하지만 분명 두 줄이 나타나 있었다. 어떡해. 나 어떡해야 해……?
고개 숙인 하루의 숨이 나봄의 얼굴 위로 뜨겁게 쏟아져 내렸다. “선을 긋겠다는 건지 단순한 걱정인지 말이야.” 전자라면 다가가는 방법을 바꿔야 하고 후자라면 조금 더 속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겠다. 길진 않아도 숱 많은 속눈썹은 그의 눈매를 진하게 만들었다. 감히 피할 수 없게 그윽한 눈길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심장박동이 점점 더 빨라졌다. 두근두근. 이러다 심장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응? 나봄아. 말해봐.” 이렇게 가까이에서 무슨 말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겨우 시선을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로 인해 다시 부딪히길 여러 번. “꼬리 쳐줄까?” “……뭘 쳐?” “살랑살랑 흔들리다가 훅 넘어올 수 있게 꼬리 쳐줄게. 안쓰러운 남자 불쌍히 생각해서 넘어와 주면 좋겠는데.” (15금 개정판)
“인사도 없이 튀었었잖아, 너.” 부지불식간이었다. 시작조차 못 해 보고 끝나 버렸던 오래된 추억이 불어닥친 것은. “나름 썸 타던 사이에 말이야. 서운하게.” 그것도 임차인과 임대인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관계로 조우하게 될 줄은 더욱더 몰랐고. “소리 소문도 없이 튄 여자를 겨우 다시 잡았는데 또 언제 도망갈 줄 알고 멀리 두겠어. 가까운 곳에 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봐야 속이 편하지. 안 그래?” 정말이지 부지불식간이었다. 빛 바랜 추억이 껍질을 벗고, 설렘의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연애하자, 이여은.” 닿지 못했던 인연의 시간이 이윽고 한곳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꼭, 가야 해요?’ 제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던 강도영이 제 앞에 서 있었다. “강, 도영입니다.” “…….”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인사를 건네 왔다. “이다름이라고 합니다.” 맞잡은 그의 손은 여전히 컸고 여전히 따뜻했다. 데인 듯 놀라 떼어 내던 손가락 끝이 스쳤다. *** “다름아.” 어깨를 감싼 후 슬쩍 고개 숙이며 부르는 이름에 시선이 마주친다. 왜 그러냐고 묻는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면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랑해.”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히면서도 끝끝내 답을 주지 않는 이다름이 조금은 야속했지만, 그 이유를 알기에 마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사랑해, 이다름.” 그저 제 고백에 설레하는 너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매번 같은 고백을 반복한다. 사랑해, 다름아.
설탕이 녹는 점 새 드라마 집필을 위해 스위스로 여행 온 다의. 그런 그녀를 쫓아 한국에서 스위스까지 무작정 따라왔다는 천연덕스런 남자, 우열.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우열이 캐스팅을 위해 직접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던 다의는 쌀쌀맞게 응수한다. 하지만 그녀는 호텔에서 우연찮게 우열과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알아주는 원수 사이 입사 초기, 누구보다 가까이 붙어 지냈던 지원과 권. 지금은 회사에서 알아주는 원수 사이가 되어버렸다. 큰 광고 건의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출장을 앞두고 일을 돕던 윤철이 갑자기 아프다고 한다. 아픈 윤철을 대신해 권이 지원을 돕겠다며 동행에 나서는데…. 너에게 가겠다 상복을 입은 초은의 앞에 태경이 나타난다. 왜 왔냐는 초은의 물음에 자신이 구해준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서라고 답한 태경은 무릎을 꿇고 초은의 차디찬 손을 잡는다. 그런 태경을 바라보는 초은의 시선에는 미안함과 공허함만이 가득 차 있고,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묘한 감정이 깃드는데…. 가랑가랑 외국 고택을 연상시키는 건물의 레스토랑 사장인 청담은 오늘도 시끌시끌한 맞은편 기사식당의 소동에 관심을 가진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남자아이를 부둥켜안은 초라한 행색의 젊은 여자가 보이고, 그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도움을 준 청담에게 영은이 말한다. “책임지세요.”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당한 영은의 태도에도 청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은 의도치 않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데…. 환상통 전생에서 한 사람이었던 일준과 이준은 환생을 하며 갈라져 태어난다. 전생은 전생일 뿐이라는 일준과 달리 이준은 후회로 얼룩진 전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모질게 굴어 상처만 주었던 덕연을 이번 생에서는 행복하게 해 주리라 다짐하며 그녀를 다시 만날 날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나 다시 만난 덕연(예은)의 마음은 이미 일준으로 가득한데….
고개 숙인 하루의 숨이 나봄의 얼굴 위로 뜨겁게 쏟아져 내렸다. “선을 긋겠다는 건지 단순한 걱정인지 말이야.” 전자라면 다가가는 방법을 바꿔야 하고 후자라면 조금 더 속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겠다. 길진 않아도 숱 많은 속눈썹은 그의 눈매를 진하게 만들었다. 감히 피할 수 없게 그윽한 눈길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심장박동이 점점 더 빨라졌다. 두근두근. 이러다 심장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응? 나봄아. 말해봐.” 이렇게 가까이에서 무슨 말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겨우 시선을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로 인해 다시 부딪히길 여러 번. “꼬리 쳐줄까?” “……뭘 쳐?” “살랑살랑 흔들리다가 훅 넘어올 수 있게 꼬리 쳐줄게. 안쓰러운 남자 불쌍히 생각해서 넘어와 주면 좋겠는데.”
“결혼하면 나소은 씨에게 좋은 점이 있어요?”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 결혼으로 나에게 좋은 점이 과연 뭘까. 아빠의 말씀처럼 엄마에게서의 자유? 완전한 자유가 아닌 반쪽짜리 자유일 게 뻔하다. 사랑도 없이 하는 결혼의 실패 사례는 이미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고 자랐기에 기대감은 없다. “약간의 자유.” “…그것뿐인데 결혼하겠다고요?” “안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하게 되겠죠. 엄마는 아빠 말씀을 어기지 못하고 난 엄마 말씀을 어기지 못하니까.” 소은의 체념한 듯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 놓고 남은 인생까지 저당 잡혀 살겠다는 여자를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순간 주호의 눈이 반짝였다. “소은 씨, 나랑 결혼하죠.” “…미쳤어요?” “뭐가 다른가요? 생전 처음 보는 남자와도 맞선 봐서 하는 결혼인데 아는 사람하고 하는 결혼이 더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난. 내 말이 맞지 않아요? 그 남자가 어떤 남자인 줄 알고 덥석 만난대. 어른들 앞에서 하는 행동만 믿으면 안 돼요. 어른들 눈엔 내 딸을 시집보내도 괜찮은 녀석이군. 일지 몰라도 아내에겐 또 다른 가면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이가 없어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소은이다. 갑자기 나타나서 다짜고짜 곁에 머물더니 이젠 결혼하자고 겁을 준다. 알면 알수록 이상하다, 이 남자. “결혼하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아! 옵션이 있어요.” “옵션이요?” “나 은주호가 따라가는데 어때요? 확 땡기죠? 결혼은 본품 나는 견본품.”
비스듬히 숙인 얼굴이 다시 눈앞에 가까워지자 놀란 작은 손이 그의 입술을 막았다. 이리저리 사방을 돌아다닌 눈동자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좀 밖에선 얌전하면 안 돼?” “얌전해지면 내일 혼인 신고하러 갈 거야?” “어? 갑자기?” 태평하게 묻는 말에 이태의 표정이 한껏 구겨졌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내는 목소리가 제법 컸다. “갑자기? 갑자기라는 말이 나와? 혼인 신고 이야기 꺼내고 벌써 3주가 넘게 지났는데? 원래대로면 이미 법적으로 도장 찍고 인주까지 다 마른 상태여야 한다고.” 분기탱천한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지윤의 미소도 얼굴 가득 번져갔다. “가자.” “어딜.” 심통 난 목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옮기는 지윤이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멈춰 선 몸이 뒤로 돌아섰다.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집에 가자.” “술 마시자.” “갑자기?” “그놈의 갑자기! …내가 진짜 혼인 신고서 가져다가 너 잘 때 몰래 지장 찍어 버릴 수도 있어. 조심해. 이건 진심이야, 모지윤.” “집에 가서 빨리 자야 내일 아침이 오지.” 그녀가 뱉은 말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 그는 여전히 심란한 표정으로 다가와 마주 섰다. “아침이 와야 지장 찍으러 갈 수 있잖아.” “ …어디 찍을 건데.” “혼인 신고서. 싫어? 싫으면 말고.” 휙 돌아서려던 어깨가 그대로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사르르 녹아버릴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에 지윤은 입술을 모아 쭉 내밀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쪽쪽거리며 입을 맞춘 그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긴 다리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낮게 속삭이는 말로 매를 버는 이태다. “나 지금 너 사랑스러워 죽을 것 같은데 한 번만 하고 자자.” (개정판)
‘꼭, 가야 해요?’ 제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던 강도영이 제 앞에 서 있었다. “강, 도영입니다.” “…….”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인사를 건네 왔다. “이다름이라고 합니다.” 맞잡은 그의 손은 여전히 컸고 여전히 따뜻했다. 데인 듯 놀라 떼어 내던 손가락 끝이 스쳤다. *** “다름아.” 어깨를 감싼 후 슬쩍 고개 숙이며 부르는 이름에 시선이 마주친다. 왜 그러냐고 묻는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면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랑해.”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히면서도 끝끝내 답을 주지 않는 이다름이 조금은 야속했지만, 그 이유를 알기에 마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사랑해, 이다름.” 그저 제 고백에 설레하는 너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매번 같은 고백을 반복한다. 사랑해, 다름아.
그를 따라 들어간 상영관은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 영화가 아니었다. “기억 안 나.” 놀릴 목적으로 추궁하는 것조차 민망할 만큼 이시호는 당당했다. “영화 관심 없어. 영화관도 너랑 첫 데이트때 처음 간 거라고 말했잖아.” “그럼 도대체 왜 재미있겠다고 했어요?” “네가 좋아하니까.” 달콤한 카라멜 팝콘 한 알을 집어 든 손이 제 입술로 다가왔다. 자연스레 벌어진 틈을 벌리고 들어온 달콤한 향에도 이시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도 좋아해 보려고 노력 중이야.” “…….” “그러니까 선의의 거짓말 정도는 눈치껏 넘어가 줍시다, 백은설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