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가 꼬마에게 초콜릿을 내밀었다. 죄지은 것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어린 소년이 제게 향한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이 지독하고 지긋지긋한 감정이 시작된 순간이. * * * 다봄의 집에서, 다봄과 함께 자란 건오는 친동생보다 더 신경 쓰이는 동생이자 가족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녀는 건오의 말과 행동이 당황스러웠다. “잘 봐요. 내 눈, 코, 입.” 그의 이마가 닿을 듯 가까워졌다. 다봄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우린 닮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어요.” “건오야.” “어딜 봐도 누나와 달라요.” 다봄은 위화감이 들었다. 건오는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엔 장난기라곤 보이지 않았다. 저런 말을 하는 녀석이든, 동요하는 본인이든, 확실히 뭔가가 이상했다. “어때요. 이젠 내가 좀 남 같아요?” “남이라고……?” “네. 남이요.”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항상 다봄과 남이고 싶었다. 누구보다 다봄 곁에 어울리는 배경을 갖추고픈 열망으로 삶을 쌓아 왔지만, 동시에 다봄이 그를 외면할까 봐 다가갈 수 없었다. “누나.” 그러나 다봄을 둘러싼 상황들이 마침내 그의 인내심을 바닥냈다. “나 그만 동정해요.” 다봄은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 백건오는 친동생이 될 수 없는 남이었고, 남자였다.
2021년 11월 15일
1주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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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아와 규연이 헤어진 건 열여덟, 그가 서울로 상경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서른셋, 두 사람은 제3의 도시에서 재회한다. . . . “멋대로 굴어도 내 옆에서 굴란 뜻이야.” 어두운 골목에 비친 그와 그녀의 시선이 얽혔다. 도아의 숨이 콱 막혔다. 조금 전 애처로운 그의 목소리는 역시 오판이었던 듯, 규연의 두 눈동자가 도아를 압도하며 짓눌렀다. “……대체 어쩌자는 건데.” 도아가 맥없이 그를 탓했다. 지금 규연은 고요하던 그녀 인생에 예고 없이 침입한 침입자였다. “나한테 왜 그래, 규연아.” 규연을 마주한 지 이틀 만에 휘청거리는 제 꼴이 너무 우스워 도아의 입술 사이로 자조적인 숨이 흘러나왔다. 그 숨이 멎기도 전에 규연은 도아의 손을 끌어당겼다. 신발 코끝이 맞닿았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귓가로 조용한 물음이 전해졌다. “만나는 사람 있어?” 그는 살짝 벌어진 도아의 입술을 보며 덧붙였다. “있어도 상관없어. 오늘은 나랑 키스해, 도아야.” 규연이 도아의 등을 가득 품고 고개를 비틀어 내렸다. 충동적이었지만 마냥 충동적이진 않았다.
“우리 사귀지만 않았지 할 건 다 한 사이잖아.” “6년도 더 된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각자 살아요.” 그가, 선생님이, 설진우가 돌아왔다. 스무 살, 연화의 재수 시절 과외 교사였으며, 연화의 첫사랑이었고, 지독히도 연화를 울린 그놈이. 스물일곱 살이 되어 마주한 첫사랑, 연화에게는 누구보다 나쁜 놈인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최악이다. “나 네 첫사랑이잖아.” “시끄러워요.” “창피해하지 마. 내 첫사랑도 너잖아.” “다 지나간 얘길 왜 해요?” “안 지나갔어. 난 계속 진행 중이야.” 7년이란 시간 동안 연화는 배우로서 자리도 잡았고, 그에게서 받은 상처도 아무는 중이었다. 기다릴 땐 안 오고, 잊고 잘 살고 있으니 뒤늦게 돌아온 나쁜 놈은 그동안 뻔뻔함까지 갖춘 걸까?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가벼운 터치에도 속절없이 흔들린다. “모든 남자를 조심해야 하지만 한번 끝까지 간 남자는 특히나 조심해. 그 남자가 제일 위험하니까.” 그의 말이 맞다. 지금 연화에게 가장 위험한 남자는 설진우였다. 진작 끝난 인연인데, 제 곁에서 말도 없이 사라진 남잔데, 그가 휘젓고 떠난 후의 삶을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데……. 그는 이제 와 어쩌자고 흔드는 걸까. 자신은 또 어쩌자고 동요하는 걸까. #스무살첫사랑 #난학생이고그쪽은선생이야 #나쁜놈과의재회 #뭐든기다릴땐안오는게국룰 #그때는과외선생 #지금은대학교수 #과거는과거일뿐 #흔들리지말자 #세상에서가장위험한존재 #끝까지갔던옛남자 #저남자는위험해 #심장아나대지마 *표지 일러스트 : 이랑
소중한 친구를 구한 대가로 피아노를 잃은 열여섯의 태하. 그의 희생으로 홀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룬 채은은 죄책감에 그를 향한 짝사랑을 마음 깊이 묻었다. 그리고 그의 증오를 기꺼이 감내하기로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하자.” 태하가 청혼해 왔다. 투병 중인 할아버지를 핑계로.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이혼해 줄게. 결혼 정도 되면 네 죄책감도 덜어지지 않겠어?” 채은은 태하의 알량한 청혼을 거절하지 못하고, 두 사람은 허울뿐인 결혼을 한다. 그리고 3년 뒤. 결혼 후 홀로 독일에서 활동하던 채은이 서울 리사이틀을 위해 귀국하고, 태하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태하야, 염치없는 말인 거 아는데…… 나 조금만 덜 싫어해 줘.” “채은아.” “……응?” “키스해도 돼?” 이혼의 그림자는 자꾸 다가오는데, 불편하기만 하던 가짜 부부의 관계가 기묘해졌다. 일러스트 ⓒ 애옹
인간들 틈엔 수인이라 불리는 것들이 섞여 존재한다. 그중 멸족한 백여우족의 마지막 반수인으로 태어난 차연아. 여우들 틈에서 조용하게 자라 나름대로 평범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윗집 늑대를 마주친 이후부터 자꾸 일이 벌어진다. “나한테 찾아오지 말란 말이 의미 없단 걸 알잖아.” 연하 같지 않은 연하 여우와, “페로몬을 내뿜으며 사고 치고 다녀도 예쁘더군요.” 각인 상대가 여우와 결혼하는 꼴을 보게 생긴 늑대. 어쩌다 이들 사이에 낀 건지……. 오랜 시간 한 여자를 기다린 여우와 늑대, 그들의 삼각관계 로맨스. *** “청첩장이 나오면 가장 먼저 줘야겠어. 늑대가 울부짖는 꼴이 더없이 기쁠 것 같거든.” 속이 뒤집힌 도운은 순식간에 재우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러자 재우 역시 도운의 멱살을 잡아 제 눈앞에 끌어당겼다. 키가 엇비슷한 두 수인이 그대로 날 선 이를 내보이며 짐승처럼 울었다. “생각해 보니 그 청첩장, 여기서 네 목이 잘려 나가면 영원히 받을 일이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