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교화론
작가이내리
0(0 명 참여)
해아가 재하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참 예뻤다. 출장 다녀온 아버지가 사온 도자기 인형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 인형을 동생처럼 다루다가 잃어버린 해아는 얼마 되지 않아 재하를 만났고 그에게 빠져들었다. 혹시 자신의 동생이 되어주지는 않을까 하며 곁을 맴돌았다. 조금 늦게 그가 자신보다 한 살 더 많다는 걸 알았지만 고집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해아는 재하에게 속았다. 도자기 인형인 줄 알았는데 까보니 새끼 때만 어여쁜 맹수였다. “기다렸어. 네가 찾아오기를.” 짓궂고 한편으로는 음습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진액을 머금은 나무 등걸처럼 거칠고 축축한 손이 아주 느리게 어깨선을 두드렸다. “나는 네가 직접 벌려주기를 원해.” 주르륵 미끄러진 손이 옴폭 팬 쇄골 위를 지그시 문질렀다. 가슴 위를 위태로이 비켜가는 손짓에 초조해졌다. 차라리 그가 먼저 뭔가를 하거나 의사를 확실히 드러낸다면 못 이기는 척 받아줄 수 있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도 그의 눈동자는 짙은 흑색이었다. 동공과 홍채의 구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기묘한 눈빛이 깜빡임 하나 없이 밀려들었다.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앞으로도 기분 좋게 싸고 싶으면 날 찾아오는 거야.」 먼저 그렇게 말했으면서. 무심코 그를 원망하던 해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제는 무언가 달라져야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품고 있었다. 그녀는 겁이 많았다. 성정도 여리고 소심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편도 아니었다. 주로 무언가를 하자고 말하는 건 재하 쪽이었다. 그러나 그는 먼저 그렇게 말할 생각이 없다고 했고 정말 하고 싶다면 그녀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였다. “하고 싶으면…… 찾아오라며.” “목적어를 분명히 말해야지.” 뻔히 다 알면서 그렇게 말하면 알아듣겠냐는 듯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 뻔뻔한 표정 연기에 순간 넋이 빠졌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렸다.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골대 바로 밑을 서성거린다고 해도 확실히 들어가지 않는 한 0점이니까. “기분 좋게 싸는 거.” 말하고 나서 즉각 얼굴이 붉어지기는 했으나 또박또박 단호한 발음이었다. 뒤늦게 울먹거리는 눈동자가 진물이 터질 듯 붉어져 아롱거렸다. “하.” 기다란 손가락이 어깨를 단단히 감아왔다. 두 가슴이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키면 닿을 거리에서 웃음 지었다. “나를 비겁한 개자식이라고 불러도 좋아.” “뭐, 뭐라고……?” “그 얼굴 예쁘다, 해아야.” 그 눈은 절정에 이를 때의 나른함을 닮았다.
이 작품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는 작품
전체 리뷰0 개
스포일러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