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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
작가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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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자 소영의 꿈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안온하게 사는 것이다. 그의 꿈은 일생에 한 번인 희락기를 함께 보냈던 민석호 중랑장과 혼약함으로써 곧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복형님이신 태자 전하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본디 무서운 분이 근래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신다. 소영은 태자 전하의 손길이 제게 닿을 때마다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태자의 팔이 소영의 허리를 스윽 감아서 제 쪽으로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소영은 제 뒤를 찔러 오는 단단한 감각에 허리를 곧추 세웠다. “소영아.” 환이 나직한 목소리로 소영을 불렀다. “…예.” “이 몸이 기다리는 걸 알고 있겠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이렇게 제게 직접 부딪쳐 오는 이 노골적인 감정을. 이리저리 불쌍하게 치이며 살던 오왕자가 무섭지만 다정한 태자 형님에게 코 꿰인 이야기. [본문 중] 소영은 눈앞이 감감했다. 뒷배 하나 없는 궁녀 소생의 왕자에, 하물며 야화라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황실의 수치라고 손가락질 받을 터였다. 태자는 자신이 지켜 주겠노라 하였으나 민 중랑장과의 혼약이 깨어지지는 않을까, 혼약이 깨지면 어디 친왕이나 공의 첩실로 내려지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곡기가 차마 넘어가지를 않았다. “소영아, 미음으로나마 요기하거라.” “전하, 소신이 지금 속이 거북하여….” “어선방 상궁의 솜씨가 별로인 것이냐? 새로운 이를 들이랴?” 소영은 정말 입맛이 없었을 뿐인데 엄한 어선방 상궁이 죽어나겠다 싶어 억지로 수저를 들었다. 목 안에 미음이 넘어갈 때마다 구역감이 일었으나 참고 끝끝내 먹어 냈다. 불편한 포만감에 소영이 뒤척거리는데 환이 소영의 손을 끌어당겨 엄지와 검지 사이의 오목한 곳을 꾹꾹 눌러 주었다. “태의 말로는 여기를 지압하면 소화가 수월하다고 하더구나.” “…송구합니다.” 태자를 뵐 낯이 없었다. 소영의 고개가 숙여졌다. 야화로 태어나 황실에 수치를 안긴 것도 모자라, 이리 몸져누워 태자를 근심케 하니 실로 자신이 죄인이었다. “송구하긴 하더냐?” 환이 던지는 질문에 소영의 고개가 더 깊이 내려갔다. 환이 가볍게 혀를 차더니 소영의 턱을 들어 눈을 마주했다. “그럼 얼른 기운을 차리거라. 네가 기운이 없으니 궁이 음울해졌지 않은가.” 과장 섞인 태자의 말에 마음이 느슨해진 소영이 살짝 웃었다. “말도 안 됩니다. 저가 무어간대 궁 전체가 우울해한단 말입니까. 저 하나 없어져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 “왕자, 왜 내게 오지 않았는가.” “…그리해선 안 되는 것이잖습니까.” “안 될 게 무어냐?” 태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소영에게 물었다. “이러면 안 되잖습니까. 신은 두렵나이다. 형제끼리 배 맞추었다고 뭇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것이 무섭고, 황적을 박탈당한 채 전하의 후궁에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도 무섭습니다.” 소영이 주섬주섬 꺼내 놓는 속내를 듣던 환은 기가 찼다. 확실히 소영은 태자 저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왕자, 이 몸이 누구더냐?” “…제국의 태자 전하시옵니다.” “그도 까먹은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군.” 세상천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묻고 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소영의 의아한 눈길이 환의 얼굴을 훑었다가 다시 천장으로 향했다. “내 위로 오직 황상과 황후 마마 두 분이 계실 뿐이고, 그마저도 내가 황위를 물려받으면 이 몸은 지존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소영은 초점 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환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런 내가 네 몸만 원할 뿐이었다면, 그저 너를 품으면 그만이다. 뉘가 감히 나를 질책할 것인가. 실컷 갖고 놀다가 버리면 그뿐이다. 네 희락기에 혹여 황상께서 아시게 될까 걱정하며, 민석호를 들일 필요가 있겠는가? 몸이 상하든 말든 피임약이나 먹여 내 침궁 한구석에 가둬 두고 질릴 때까지 마음껏 범하면 될 것을.” 냉정한 말씀에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너는 내가 네게 했던 말을 전혀 믿지 않은 모양이지?” 소영은 생각했다. 내가 이분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가. “아니면 너는 이 몸이, 연모하는 이의 이름을 빼앗고 후궁 뒷방에 눌러 앉혀 남들 몰래 몸이나 탐하는 악한으로 보였는가?” 소영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자신이 태자를 악한으로 보았던가? 아니다. 그저 소영은 이후의 상황이 무서웠을 따름이다. “내가 여태껏 네게 보여 준 마음이 고작 그거였던가?” 소영이 고개를 급히 내저었다. 여태껏 저가 보아온 태자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다정하시고, 누구보다 저를 아껴 주셨다. 저를 낳은 어미에게도 받아 본 적 없는 애정을 쏟아 주셨다. 환의 양손이 소영의 뺨을 감쌌다. 그의 진중한 눈빛이 소영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닿았다. “나를 좀 더 믿어다오. 누구도 너를 괄시할 수 없도록 가장 높은 데로 올려 줄 것이다. 네가 무서워할 일 따위는 조금도 없을 것이다.”
완결 여부완결
에피소드3
연령 등급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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