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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을 땐 그랬다. 나타나기만 해봐.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을 땐, 그랬다. 하지만 그랬던 마음은 이미 자취를 감춰버렸다. 지독하게 치솟던 분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스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그 언젠가처럼 그녀를 갖고 싶었다. 아직도 아무런 말없이 떠나버린 그날이 지독하게 원망스럽지만, 그것보다…… 끝끝내 사랑한다 말해주지 못했던 그 밤이 더 사무쳤다. 차선희 장편소설[박하 사탕]

완결 여부완결
에피소드30 화
연령 등급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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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정보

팬덤 지표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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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이용자 수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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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플랫폼 평점

8.9

📊 플랫폼 별 순위

6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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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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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희작가의 다른 작품39

thumnail

재회의 조건

“나랑…… 잘래요?” 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정략결혼에 내던져진 혜인은, 뉴욕으로 떠나는 짝사랑 태헌을 찾아가 제안한다. 그리고 둘은 그날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된다. 5년 후, 혜인은 홀로 태헌의 아들을 키우고 있었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넌 내 아들의 엄마가 될 거야. 그리고 내 아내가 되겠지.”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된 태헌은 결혼을 강요하고, 혜인은 그의 제안을 믿을 수가 없다. “덜덜 떨면서, 눈도 제대로 못 맞추면서 자자고? 나랑?” 조부의 생일파티, 지루함에 지친 태헌을 도발하는 여자. 그녀는 바로 ‘강태헌 스토커’라 불리는 류혜인이었다. 그날, 그는 홀린 듯 그녀와 뜨거운 밤을 보낸다. 5년 후, 그는 우연히 혜인의 비밀을 알게 되고,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를 찾아간다. “혹시 날, 사랑하나요?” 수시로 기억나 불면에 빠지게 했던 귀찮은 여자가 다시 그를 홀리기 시작했다. 일러스트 : 틈 키워드 : 현대물, 재회물, 첫사랑, 짝사랑, 소유/독점욕, 상처녀, 외유내강녀, 절륜남, 재벌남, 까칠남,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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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는 밤

우연히 발견한 서류, 그리고 사진 한 장. 환하게 웃고 있는 어떤 여자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빛 가루에 목이 졸리는 것 같았다. 무료한 일상, 지루한 생활들 속에서 모처럼 만에 흥미로운 걸 발견한 느낌. 두 눈으로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목이 졸린 것 같은 숨 막힘의 이유가 무언지 알아야 했다. 그렇게 주우경의 미행이 시작되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커피. 그는 일정한 패턴을 가진 조용하고 예의바른 손님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녀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그를 아주, 아주 잘못 봤다는 걸.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그 카페에 왔다. 그녀를 찾고, 그녀를 보고, 그녀를 만나려고. 유원은 그가 무서웠고, 그가 신경 쓰였으며, 이상하게도 그런 그가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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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No.19(Scene No. 19) 외전

이렇게 되어버릴 줄 몰랐다. ‘얼마나 더 안아야 만족할 수 있을까.’ 규원은 매 순간 그녀를 안을 때마다 그 생각으로 골몰했다. 안을수록 허기가 졌다. 점점 더 자제가 되지 않았다. 확실히 그는 요즘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럴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시 아프다. 차라리 사랑한다고 고백해버렸다면 달랐을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나는 당신과 헤어지고 싶은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약혼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겠지?’ 하연은 거울 속에서 가슴으로만 울고 있는 바보 같은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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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당하다

추방재판에 회부된 한국인 입양아 제이, 추방재판을 도와줄 수 있다는 준의 제안으로 그의 누드모델이 되다. “모델요?” 준은 제이에게 누드모델을 제안했다. “돈은, 원하는 대로 줄게요.” 우연히 받게 된 제안, 그렇게 그녀는 준의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랑해요.” 제이의 말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와아. 하하, 하하하. 알아요? 이번 건 좀 그럴듯했어. 깜빡 속을 뻔했잖아요.” 황당한 고백, 그는 제이의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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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한 결혼

“이혼해요.” “이혼은 없어. 네가 가진 지분은 별개로 치더라도 넌 꽤 쓸 만한 구석이 있잖아?” 이혼 따윈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다. 이하나로부터 시작된 욕망에 미쳐 갈 걸 몰랐던 것처럼. 「비쩍 마른 데다 화이트 태닝을 수백 번은 받은 것 같은, 여자.」 이하나는 그의 복수를 완성할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목원은 제 세상이 무너졌듯, 이하나의 세상 또한 철저히 망가뜨릴 작정이었다. 완벽한 준비, 그리고 접근. 결혼은 복수의 서막이었다. “단 한 순간도 나를, 사랑한 적은 없었나요?” “사랑? 아니. 설마. 그럴 리가.” 복수에 사랑 따윈 사치였다. 그가 원하는 건, 이하나가 제 곁에서 천천히 말라 죽어 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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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치미는

#단독선공개 #재회물 #소유욕 #직진연하남 #집착남 #상처녀 모바일게임 회사 사옥 리모델링을 맡게 된 유은은 대표실에서 뜻밖의 인물과 재회한다. “하아, 이게…… 누구야?” 그는 바로, 11년 전 집안끼리의 악연으로 헤어졌던 정후였다. 유은은 친동생과도 같았던 그와의 재회가 반가운 한편 지난날 아버지가 저지른 죄가 떠올라 괴로운데……. “진짜…… 몰랐어?” “…….” “내 첫사랑이었다고, 네가.” 그런 그녀에게 그가 거침없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내가 너랑 하겠다는 건, 남자 여자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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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거기서

여자가 새빨개진 얼굴로 제 몸을 감싸 안았다. “부끄럽긴 좀 늦은 것 같은데.” “그런 게 아니라…….” “아니라?” “이건 좀 불공평하니까.” 여자는 부끄럽지 않은 사람치곤 너무 빨갰고,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아하?” “당신 옷은 너무 멀쩡하잖아.” 거기다, 목소리는 그걸 들킬 만큼 떨렸고. “그럼, 나도 공평하게 벗으면 되겠군.” 씩 웃은 태준이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 어두운 조명, 이국이라는 특수, 거기다…… 10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까지. 그를 알아본 그녀가 비정상인 걸까? 기태준, 열여덟 납치된 저를 구하고 사라진 남자. 그를 다시 만난 순간 이루지 못한 채 동결된 감정이 깨어났다. 표지 일러스트 : 애옹 키워드 : 현대로맨스, 재회물, 능력남, 까칠남, 외유내강여주, 원나잇후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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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외전

2년간의 잠복기를 끝낸 장휘도. 드디어, 마리를 향한 그의 도발이 시작되었다. 이것저것 골치 아픈 인생,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겨버렸다. “내 어디가 장휘도 씨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시간 낭비예요.” “시간 낭비는 2년 동안 내가 한 짓이고.” 잠복기만 2년, 장휘도의 전투력이 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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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서한은 있는 힘껏 그를 밀쳐냈다. 하지만 그는 밀쳐진 다음에도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삼킨다. 또 밀쳤다. 역시나 그는 다시 서한의 얼굴을 부여잡고 입을 맞추었다. 결국, 그녀가 포기해 버릴 때까지. “기억해 내. 받고 싶은 만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붉어진 얼굴로 그녀는 그의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차선희의 로맨스 장편 소설 『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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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유화물감 냄새가 지독한 작은 집에 머물면서 종일 그림만 그려대는 여자 라이. 어느 날, 그런 라이 앞에 그림을 사겠다는 남자가 나타났다. “네 그림이 좋아. 적나라하게 드러난 추악함과 다르게 잠깐씩 보이는 그 연약함이 맘에 들어. 네 그림은 진짜야. 난 내 돈을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남자는 그림만 사고 싶은 게 아니라고 했다. “당신 나한테 집적대는 거였어?” “어쩌면.”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어떤 그림에 매료된 남자 강도혁. 강렬한 그림과는 다르게 이리저리로 삐죽삐죽 솟은 까치집 머리를 한 소년 같은 여자를 만났다. “나랑 자고 싶어? 이렇게? 이런 식으로?” “이런 식은 모르겠고, 자고 싶은 건 맞아. 그래서?” 의식하지 못한 사이 여자는 그를 무섭도록 끌어당겼다. 여자가 밀어낸다. 다가오지 말라며 매번 매 순간. 같은 꿈을 꾸는 도혁과 라이. 둘은 그 꿈처럼 같은 곳을 볼 수 있을까. 일러스트 ⓒ 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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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한 결혼

“이혼해요.” “이혼은 없어. 네가 가진 지분은 별개로 치더라도 넌 꽤 쓸 만한 구석이 있잖아?” 이혼 따윈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다. 이하나로부터 시작된 욕망에 미쳐 갈 걸 몰랐던 것처럼. 「비쩍 마른 데다 화이트 태닝을 수백 번은 받은 것 같은, 여자.」 이하나는 그의 복수를 완성할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목원은 제 세상이 무너졌듯, 이하나의 세상 또한 철저히 망가뜨릴 작정이었다. 완벽한 준비, 그리고 접근. 결혼은 복수의 서막이었다. “단 한 순간도 나를, 사랑한 적은 없었나요?” “사랑? 아니. 설마. 그럴 리가.” 복수에 사랑 따윈 사치였다. 그가 원하는 건, 이하나가 제 곁에서 천천히 말라 죽어 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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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협박

“이혼하고 싶다면 아기부터 낳아요.” 이혁의 제안은 빚을 담보로 한 결혼 협박이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서재인 씨는 자유가 될 겁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고, 또 어떤 것도 가질 수 있는 재력이 보장된 자유죠.” 하지만 재인은 그런 것들이 보장된 자유 따위는 바란 적도 없었다.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익숙지 않은 거절에 이혁의 눈빛은 순식간에 냉기를 내뿜고, 그 냉혹한 눈빛에서 재인은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만다. 끝. 그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건, 단 하나. 이 제안을 거절하면, 제 목숨 줄은 다시 사채업자에게 던져질 것이다. 차가운 눈빛에 담긴 무언의 협박. 견디지 못한 재인은 결국, 그가 내민 혼전 계약서에 사인하고 마는데. *** 원하는 걸 갖지 못한 적이 없는 남자 진이혁에게 서재인과의 결혼은 원하는 게 명확한 계약일뿐이었다. 그러나, “소리 내지 마. 내가 뭘 하든.” 진이혁이 서재인을 안은 순간, 그 명확했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표지 일러스트레이터 : 푸루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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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의 연인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만, 난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낼 생각 따윈 없어. 그러니까 날 설득하려고 들지 마. 난 너랑 있어. 그럴 거야. 너는 모르겠지. 내 시간과 네 시간이 함께 흐르지 않을 거란 걸. 그 언젠가 네 시간이 멈추고, 넌 내 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끔찍하겠지. “불쑥불쑥 내가 모르는 너의 그 10년에 화가 치밀어. 어여뻐 미치지, 싶다가도 죽도록 다그치고 싶어지지. 돌았나 싶게…… 정신이 산란해.” -본문 중에서- 젠장.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겨 나왔지? 한 번만 더 제 앞에 나타난다면 단단히 경고를 해두어야 할 것 같다. 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바짝 말라 뽀득거리던 모래사장은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어느새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밟히기 시작했다. 제 발에 밟혀 서걱거리는 모래를 힐끗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순간 그는 우뚝 그 자리에 서버렸다. 저 여자를 알고 있다. 저런 칠흑 같은 머리칼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제 눈이 확인한 것이 사실이라면, 현실이라면 말이다.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의 뒤로 깊게 패인 발자국이 길게 그를 뒤따랐다. 서걱거리는 소리 따윈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너……!” 팔을 홱 잡아 돌리자 놀란 듯 커진 눈이 그를 향했다. 빌어먹을. 이건 현실이어야만 한다. 수백 번 꾸었던 꿈이 절대로 아니어야 할 것이다. 사나워진 그의 눈이 그녀의 얼굴 위를 굴렀다. “너!” “오랜, 만이야.” 이보다 어색한 인사가 있을까. 환은 기가 막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이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미친 듯이 뒤흔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0년이야. 오랜만이야? 감쪽같이 사라진 주제가 오랜만? 애써 미소를 짓는 얼굴은 측은하기 그지없다. 춥지도 않으면서 딱딱 부딪치는 것 같은 제 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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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휩쓸리다

“씹고 싶은 건, 이쪽인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우영을 지독히도 닮은 남자, 차진언. 그가 어이없는 소릴 지껄이며 인혜의 입술을 주시했다. 삐익! 그 순간 머릿속으로 찢어질 듯한 경고음이 울렸다. 깜짝 놀란 인혜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나 곧 벽에 막혔다. “신고하려면 해.” 다시 한 발짝 다가선 남자가 인혜의 턱을 쥔 채 그대로 입술을 집어삼켰다. 찰싹! 가까스로 남자를 밀어낸 인혜가 있는 힘껏 그의 뺨을 후려쳤다. 남자의 고개가 사정없이 옆으로 돌아갔다. “못할 것 같니?” “하라고, 그러니까.” 남자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꺾은 채, 인혜의 눈을 끈질기게 응시했다. “죽었던데, 그 자식.” 그의 입술이 목소리만큼이나 사납게 뒤틀렸다. 씩씩거리고 있던 인혜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출 만큼. 남자와 일탈 같은 밤을 보낸 인혜는 결국 그에게 휩쓸리고 만다. 인혜에게 그날이 다시는 없을 일탈이었다면, 진언에게 그날은 다시 없을 완벽한 밤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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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

1. 네가 올 때(When it rains) - 당당당당 “내일, 비가 올까요?” 사랑을 알아차렸던 순간에도, “비가 그칠 거야. 가야 해.” 너에게 비밀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도, “사랑이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려워.” 네가 이 사랑이 끝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도, 빗소리는 언제나 우리를 감쌌다. “이든. 나는 널 놓아주지 않을 거야.” 네가 말도 안 되는 미신을 믿는다고 해도, 어떤 종류의 강박을 가지고 있어도, 혹은 네 비밀이 아주 나쁘더라도. 너를 사랑할 것이다. 비와 비밀, 그리고 너. 비가 내리는 날 펼쳐지는 마법 같은 로맨스. * 2. 머리에 꽃만 안 달았지 - 전여린 머리에 꽃만 안 달았지 비만 왔다 하면 머리에 꽃 단 것도 아니면서 미치는 3년 차 대리 이화영, 비 오는 날 회식을 하고 필름이 끊겼다 돌아와 보니 옆엔 햇병아리 신입 사원인 강서주가 누워 있었다. “야, 어제 우리 했어?” “사랑해서 미안해요.” 무슨 말을 해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강서주 때문에 화영은 미쳐 버릴 것 같다. 사실은 안 미친 여자 화영과 손에 꽃을 든 미친 남자 서주의 촉촉한 로맨스. * 3. 조우(朝雨) - 진새벽 십여 년간 발길조차 하지 않았던 이 낯선 곳 가척에서 나를,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성게처럼 가시를 세운 내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다시 내 어깨를 붙들며 물어왔다. “주이경. 이경아, 이경아. 나야. 해우.” “……해우?” 해우. 그 이름을 내뱉자 파도가 너울이 되어 오듯 그리움이 왈칵 나를 적셔 들었다. 그래, 그 애였다. 꼭 내 이름을 두 번씩 부르던, 이름에서 비 냄새가 나던 그 애. “권해우.” 가만히 혀를 굴려 떠오른 그 애의 이름을 내뱉어 보았다. 그러자 그 애는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었다. * 4. 천사가 돌아왔다(with rain) - 차선희 “그거 알아? 오감 중에 미각이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 거?” 제 입술로 눈물을 훔치며 그는 말했다. “이제 난 널 생각하면 제일 먼저 이 눈물 맛부터 떠오를 거야.” 그리고 사라졌지. “네가 내 집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주혜기였기 때문이야. K-story 때문이 아니라.” 젠장. “그럼 난 여기에 더 있을 필요가 없어요, 작가님.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주혜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K-story의 TF팀이기 때문이니까요.” 12년 만에 그가 돌아왔다. 죽어도 잡아야만 하는 작가 혜기로. “늦어서 미안.” 그 말에 바보처럼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천사가 돌아왔다. 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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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당하다 외전

추방재판에 회부된 한국인 입양아 제이, 추방재판을 도와줄 수 있다는 준의 제안으로 그의 누드모델이 되다. “모델요?” 준은 제이에게 누드모델을 제안했다. “돈은, 원하는 대로 줄게요.” 우연히 받게 된 제안, 그렇게 그녀는 준의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랑해요.” 제이의 말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와아. 하하, 하하하. 알아요? 이번 건 좀 그럴듯했어. 깜빡 속을 뻔했잖아요.” 황당한 고백, 그는 제이의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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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No.19(Scene No. 19)

이렇게 되어버릴 줄 몰랐다. ‘얼마나 더 안아야 만족할 수 있을까.’ 규원은 매 순간 그녀를 안을 때마다 그 생각으로 골몰했다. 안을수록 허기가 졌다. 점점 더 자제가 되지 않았다. 확실히 그는 요즘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럴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시 아프다. 차라리 사랑한다고 고백해버렸다면 달랐을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나는 당신과 헤어지고 싶은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약혼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겠지?’ 하연은 거울 속에서 가슴으로만 울고 있는 바보 같은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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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2년간의 잠복기를 끝낸 장휘도. 드디어, 마리를 향한 그의 도발이 시작되었다. 이것저것 골치 아픈 인생,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겨버렸다. “내 어디가 장휘도 씨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시간 낭비예요.” “시간 낭비는 2년 동안 내가 한 짓이고.” 잠복기만 2년, 장휘도의 전투력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럼, 잘래? 자고 나면 이래도 되는 거야? 그럼 자고.” “미쳤어요?” #그럼 잘래? #어그로 끄는 놈 #일반적이지 않은 연애 #대단한 여자 #나랑 하자, 그 결혼 #죽을 것 같던데 [미리보기] “맞아요. 성적 긴장감. 그거, 인정한다고. 그런데 거기에 뭔가 더 있을 것처럼 포장하지 말아요. 그건 좀… 웃기잖아.” “유마리.”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요. 우린 일반적인 연애를 하는 게 아니니까.” 연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막상 자신의 입을 빌려 튀어나가는 그 말에 입이 썼다. 하지만 계속 만나 볼 생각이란 그 말을 일반적인 연애로 들을 만큼 그와 나눈 게 없다. 마리가 이 남자와 나눈 거라곤 그저… 몸뿐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맘이 좀 편해?” 그가 마리를 향해 차갑게 물었다. 말투만큼이나 서늘한 눈빛이었다. 편하고 편하지 않고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기대는 하지 않겠지. 또 처음으로 되돌아가기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이만큼도 그녀에겐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성적 긴장감이란 그 어이없는 것에 이끌리는 걸 인정하기 쉬운 여자가 어디 있을까? “적어도 당신 연애 중 이런 시작은 없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해도 나쁜 놈은 아니라고 들었으니까.” “뭐?” “하겠다고. 당신 말대로. 가다 보면 끝이 있겠죠. 지겨워지든가, 귀찮아지든가.” “내 연애에 대해 그딴 확신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군. 어쨌든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래. 가보자. 가다 보면 끝이 있겠지. 완전히 끝내든가, 다시 시작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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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니스 (blindness)

티끌 하나 없는 하얀 운동화였다. 그 위로 검은 진은 스크래치가 과하다 싶을 만큼 무릎에선 사정없이 찢어진 모양이었다. 잠시 그 사이로 보이는 무릎 뼈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별 생각을 다하고 있지. 참. 옅게 고개를 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굳어져버렸다. 마치 얼음처럼. 그 순간에도 문득 어릴 적 얼음땡 놀이를 하던 그때가 생각났다. 앉은뱅이가 된 어린 그녀는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에까지 그렇게 앉아있었더랬다. 땡 해줄 아이들은 그렇게 바보처럼 앉은뱅이로 그 자리를 지킬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었다. 그렇게 누군가 자신을 건드려 깨워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얼마를 더 그 자리에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멍하니 굳어있던 눈빛이 하얀 티셔츠를 입은 상체를 지나 마침내 닿은 곳에는 절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던 그 얼굴이 선명했다. 짙은 검은 눈이 차가운 빛을 마구 뿜어내며 저를 쏘아보고 있었다. 마치 꿈처럼. “딱 걸렸네. 주희재.”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붉은 입술을 또 멍하니 쳐다보았던가. 그제야 언 듯 굳어있던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랜, 만이야.” 퓨즈가 나간 듯 암전 상태인 머릿속을 고려했을 때, 그나마 가장 그럴 듯한 인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나마 말을 건넸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깨닫기도 전에 그의 손에 일으켜졌다. 그는 그녀의 팔목을 아프게 부여잡은 채 뒤흔들 기세로 힘을 주어 들어올린다. 마치 레이저라도 쏠 듯 지독하게 사나운 눈빛이 여과 없이 그대로 쏟아졌다. 그래서 알았다. 그 인사가 사실은 아주 잘못된, 아주 못된 인사였다는 걸. “손님!” 소란에 뛰쳐나온 카페 주인이 그녀의 손목을 아프게 부여잡은 그의 손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묻는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을 리 없었다. 이쯤,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으니까. 시원하게 뺨을 한 대 얻어맞았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희재는 카페 주인을 향해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조금 안심이 되는 눈빛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럼 빠져.”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말투였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떨었다. 저런 투의 말을 이 남자에게서 들어본 적 없었다. 그는 항상 눈꼬리를 접고,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해사하게 웃던 남자였다. “이보세요!” “빠지라고. 뭣도 모르면서 껴들지 말고.” 슬쩍 카페 주인에게로 시선을 비꼈던 그의 눈이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이글이글 타는 눈이다. 화가 나 미칠 것 같은 그런 눈이다. 스물아홉. 8년 만에 마주하는 그 눈빛에 무채색으로 지나왔던 그 8년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이미 소란해진 카페 안에 더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민폐라니. “죄송합니다.” 다시 고개 숙여 사과한 그녀는 의식적으로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카페를 가로질렀다. 등 뒤로 살벌하게 이글거리는 석의 시선이 찌를 듯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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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강추!서한은 있는 힘껏 그를 밀쳐냈다. 하지만 그는 밀쳐진 다음에도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삼킨다. 또 밀쳤다. 역시나 그는 다시 서한의 얼굴을 부여잡고 입을 맞추었다. 결국, 그녀가 포기해 버릴 때까지. “기억해 내. 받고 싶은 만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붉어진 얼굴로 그녀는 그의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차선희의 로맨스 장편 소설 『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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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대가 싫어.” 황제의 서자 루카스는 처음부터 적국의 왕녀였던 아드린느를 미워했다. 벙어리 왕녀, 아드린느가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 저는, 전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루카스의 냉대에도 아드린느는 꿋꿋했다. 그녀는 성안의 모든 사람을 제 사람으로 만든 것처럼, 그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루카스는 이름뿐인 아내가 신경 쓰여 미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밤. 루카스는 피비린내를 풍기며 아드린느가 잠든 침실로 숨어들었다. “그대는 내 아내고, 원하면 언제든 난 그대를 안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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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戀愛)

“괜찮다니까.” 주은이 정우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괜찮긴. 택시 타는 것만 보고, 인마.” 벌겋게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정우가 주은의 팔을 다시 붙잡았다. “지금 네가 더 취했거든?” 취기가 오르긴 했지만, 주은의 정신은 말짱했다. 주은은 술을 즐기진 않았지만, 술에 금방 취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어허! 그래도 인마. 내가 남잔데!” 택시를 잡기 위해 휘휘 손을 흔들며 정우가 소리쳤다. “어련하시겠어요.” 주은이 피시식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아직 취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 하지만 곧 빙글 돌 것도 같다. 얼른 집에 가야지. 주은은 제 앞에서 긴 팔을 휘휘 젖는 정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타.” 새까만 승용차 한 대가 정우의 앞으로 섰다. 부드럽게 내려간 차창 너머로 태윤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어? 교수님. 가시게요?” “갈 거야.” “그럼 주은이 가다가 떨어뜨려 주세요.” 정우가 헤실거리며 태윤을 향해 말했다. “그러려는 거잖아.” “아니. 아니요.” 주은이 재빨리 그를 향해 거절했다. “주은아.” 비틀비틀 정우가 주은을 향해 걸어왔다. “싫어.” 인상을 쓰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녀석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택시비 굳었다.” “타. 빨리. 피곤하다. 이주은.” “저기…….” “내가 내려서 태워?” 미간을 찌푸리며 태윤이 서늘하게 말했다. 주은의 시선이 그에게서 운전석으로 앉은 대리기사에게로 또 제 앞에서 비틀거리며 실실 웃어대고 있는 정우에게로 움직였다. 그리곤 이내 다시 태윤에게로 향한다. “타라고.” 그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주은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우리 주은이 잘 부탁드립니다.” 주은이 마지못해 차에 오르자, 정우가 꾸벅 인사하며 태윤을 향해 말했다. “갑시다.” 눈두덩을 꾹꾹 누르며 태윤이 의자 뒤로 고개를 젖혔다. 차체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은은 허리를 꼿꼿이 퍼고 앉아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삼성동으로 갑니까?” 대리기사가 물었다. “아뇨.” 태윤이 주은을 쳐다보며 대리기사를 향해 답했다. “동대문구청요.” “들으셨죠?” “네. 동대문구청 쪽으로 먼저 가겠습니다.” 태윤이 다시 몸을 뒤로 젖혔다. 쿵덕쿵덕 심장이 뛰었다. 혹여 제 심장소리를 들을까 주은은 발끝에 힘을 꽉 준 채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옆으로 느껴지는 고른 호흡과 그 호흡을 따라 느껴지는 알싸한 술 냄새가 온몸이 따갑도록 인식되었다. “주은아.” 그가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괜히 울컥 무언가 치밀었다. “주은아.” 또 그가 그녀를 불렀다. 주은은 버릇처럼 두 손을 맞잡고 이리저리 비틀어댔다. 후우. 태윤의 입에서 기다랗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모질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두 눈이 똑바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못하겠다. 이런 거.” 한숨 섞인 그의 음성이 가슴을 그었다. 꾸역꾸역 참았던 게 그어진 가슴에서 후드득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은은 물기가 어른어른 거리는 눈으로 태윤을 쏘아보았다. “하기 싫다. 이딴 거.” 기어이 흔들고 말지.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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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의아하던 혜원의 시선이 엘리베이터 상단의 디지털 숫자가 바뀜과 동시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도 가끔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그 눈이 생각나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양,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울컥 내려앉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자신의 앞에 서 있다. 서강우. 그가. 보름의 달빛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방학이라 잠깐 다니러왔던 집이었고, 우연히 고교시절 어울렸던 친구 녀석들을 만났던 날이기도 했다. 술이 좀 과했다. 그렇다고 비틀비틀 정신이 없었던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난히도 어찔어찔 열이 올라 그 쪽으로 발길을 돌렸던 거였다. 열이 올라 짜증나는 신체와는 달리 머릿속은 차갑디 차가워져 그 괴리에 몸서리가 쳐졌으니까. “여기서 뭐해?” 수영장 난간에 앉아 달빛을 받아 하얀 다리를 물속에 담근 채 찰방찰방 물장구를 치고 있던 혜원은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 굳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고요를 채우던 물소리가 사라졌다. “이 새벽에 잠 안자고 여기서 뭐하냐고.” 강우가 성큼성큼 그 곁으로 다가가는데도 혜원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냥, 잠이 안와서…….” 혜원이 그에게서 시선을 내려 이젠 잔잔해져버린 푸른 물을 쳐다보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혜원의 시선을 따라 그의 시선 역시 혜원의 발목을 감싸고 있는 그 물에 가 닿았다. 강우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구긴 채 혜원의 옆으로 앉았다. 피부가 닿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옆자리로 앉음과 동시에 혜원이 움찔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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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휩쓸리다

“씹고 싶은 건, 이쪽인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우영을 지독히도 닮은 남자, 차진언. 그가 어이없는 소릴 지껄이며 인혜의 입술을 주시했다. 삐익! 그 순간 머릿속으로 찢어질 듯한 경고음이 울렸다. 깜짝 놀란 인혜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나 곧 벽에 막혔다. “신고하려면 해.” 다시 한 발짝 다가선 남자가 인혜의 턱을 쥔 채 그대로 입술을 집어삼켰다. 찰싹! 가까스로 남자를 밀어낸 인혜가 있는 힘껏 그의 뺨을 후려쳤다. 남자의 고개가 사정없이 옆으로 돌아갔다. “못할 것 같니?” “하라고, 그러니까.” 남자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꺾은 채, 인혜의 눈을 끈질기게 응시했다. “죽었던데, 그 자식.” 그의 입술이 목소리만큼이나 사납게 뒤틀렸다. 씩씩거리고 있던 인혜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출 만큼. 남자와 일탈 같은 밤을 보낸 인혜는 결국 그에게 휩쓸리고 만다. 인혜에게 그날이 다시는 없을 일탈이었다면, 진언에게 그날은 다시 없을 완벽한 밤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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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각(痛覺)

「 그날, 소파에 길게 누워 잠든 척 연기했던 거였다. 바스락거리는 이효의 뒤척임만큼이나 그도 떨렸던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찌 그런 이효를 두고 잠이 들 수 있었을까. 얼마쯤 그렇게 쫑긋 귀를 세운 채 잠든 척 연기를 했던 걸까. 사라락 소리와 함께 이효가 침대에서 내려서는 게 느껴졌다. 그 소리에 바짝 긴장한 채로 두 눈을 질끈 감았었다. - 열아. 가느다랗고 여린 목소리였다. 행여 답해 버릴까 입술을 깨물었다. - 열아. 자? 팔이 멋대로 뻗어 버릴 것 같아 제 몸통을 더 꼭 쥐었던 것 같다. 거의 얼얼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렇게 이효의 그 목소리를 참았다. 그 숨결을 버텨내던 거였다. 제 앞에 쪼그리고 앉은 이효가 낮게 흘리는 한숨을, 그리고 어른어른 작은 움직임이 만드는 그림자를, 꾸역꾸역 참을 수밖에 없었던 건 처음 내몰린 뜨거운 어떤 욕망 때문이었다. 차가운 심장을 비집고 쩍쩍 균열을 만들며 흘러나오기 시작한 어떤 욕망 말이다. 대책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래서 가늠할 수조차 없는 그런 마음. 생전 처음 겪는 그 마음이 그는 일견 두렵기도 했다. - 사랑해. 그 두려움 탓에 이효가 제 품 안에서 했던 그 웅얼거림을 모른 척했다. 그 뜨거운 고백을, 절절하던 마음을 받지 못한 척 숨겼다.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그 떨리던 고백이 거짓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어린 치기로 잡지 못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더 악독하게 증오했었는지도 모른다. 네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악다구니 썼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와 이런 식으로 밀려드는 기억들이 무슨 소용일까. 갑작스러운 폭우에 투둑 터져 버리는 둑처럼 무수히 많은 기억들이 쏟아져 나온들 이제 와 어쩐단 말인가. - 어. 그러네. 그렇게 담담해져 버린 너를 두고서. 탁! 쏟아지는 물줄기를 무기력하게 맞으며 그가 손바닥으로 욕실 벽을 내리치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물줄기가 흩어졌다. 두려운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속속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기억이다.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작은 것들까지 미친 듯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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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의아하던 혜원의 시선이 엘리베이터 상단의 디지털 숫자가 바뀜과 동시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도 가끔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그 눈이 생각나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양,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울컥 내려앉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자신의 앞에 서 있다. 서강우. 그가. <본문 중에서> 보름의 달빛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방학이라 잠깐 다니러왔던 집이었고, 우연히 고교시절 어울렸던 친구 녀석들을 만났던 날이기도 했다. 술이 좀 과했다. 그렇다고 비틀비틀 정신이 없었던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난히도 어찔어찔 열이 올라 그 쪽으로 발길을 돌렸던 거였다. 열이 올라 짜증나는 신체와는 달리 머릿속은 차갑디 차가워져 그 괴리에 몸서리가 쳐졌으니까. “여기서 뭐해?” 수영장 난간에 앉아 달빛을 받아 하얀 다리를 물속에 담근 채 찰방찰방 물장구를 치고 있던 혜원은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 굳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고요를 채우던 물소리가 사라졌다. “이 새벽에 잠 안자고 여기서 뭐하냐고.” 강우가 성큼성큼 그 곁으로 다가가는데도 혜원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냥, 잠이 안와서…….” 혜원이 그에게서 시선을 내려 이젠 잔잔해져버린 푸른 물을 쳐다보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혜원의 시선을 따라 그의 시선 역시 혜원의 발목을 감싸고 있는 그 물에 가 닿았다. 강우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구긴 채 혜원의 옆으로 앉았다. 피부가 닿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옆자리로 앉음과 동시에 혜원이 움찔 몸을 떨었다. “어떻게 안 해.”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그렇게 좀…….” “죄송해요.” “떨지 좀 마라고. 어떻게 안하니까.” 강우가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물속으로 풍덩 몸을 던졌다. 고요하던 수영장이 찰박찰박 물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혜원의 종아리 아래로 물살이 사납게 일렁였다. 혜원은 멍하니 그 물살을 쳐다보다 더 앞으로 눈을 움직였다. 그가 물살을 가르며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날. 혜원은 한 동안 그렇게 강우가 수영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우는 혜원의 그 시선을 느끼며 한참을 그렇게 물살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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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마시다

“그럼 우리…… 잘래요?” 이서하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탈이었다. 술기운이었고, 감정적으로 무너진 상태인 채로 저질러버린. “당신과 그날 한 번으로 끝낼 생각 없어, 난.” 서태림 인생에 처음 겪어보는 갈증이었다. 실수라 치부한 여자의 일탈에 그는 점점 타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잘래요? #맛있겠네요 #도망갈 작정이면 생각을 바꿔 #해버리고 싶은 사람 #그렇게 보지 마 #하고 싶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 #열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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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View)

“죽으면, 그때 생각해 볼게.” 끈덕지게 진동하던 휴대전화를 받아 든 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공항. 쭈그려 앉아 얼굴을 묻고 울던 바로 그 여자. 한은 자신의 칵테일바에서 마주친 여자가 낯설지 않은 이유를 떠올렸다. “우리 그럼 같이 있을 수 있어?” 턱을 괸 채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한이 물었다. “글쎄.” 정원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지며 침이 넘어간다. 이건 칵테일 때문일까. 아니면 한의 입술 때문일까? 어쩌면 지난 시간은 너를 내 눈에 담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긴 외로움의 끝에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기까지, 치열했던 정원과 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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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각(痛覺)

차가운 심장을 비집고 쩍쩍 균열을 만들며 흘러나오기 시작한 어떤 욕망 말이다. 대책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래서 가늠할 수조차 없는 그런 마음. 생전 처음 겪는 그 마음이 그는 일견 두렵기도 했다. - 사랑해. 그 두려움 탓에 이효가 제 품 안에서 했던 그 웅얼거림을 모른 척했다. 그 뜨거운 고백을, 절절하던 마음을 받지 못한 척 숨겼다.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그 떨리던 고백이 거짓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어린 치기로 잡지 못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더 악독하게 증오했었는지도 모른다. 네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악다구니 썼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와 이런 식으로 밀려드는 기억들이 무슨 소용일까. 갑작스러운 폭우에 투둑 터져 버리는 둑처럼 무수히 많은 기억들이 쏟아져 나온들 이제 와 어쩐단 말인가. - 어. 그러네. 그렇게 담담해져 버린 너를 두고서. 탁! 쏟아지는 물줄기를 무기력하게 맞으며 그가 손바닥으로 욕실 벽을 내리치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물줄기가 흩어졌다. 두려운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속속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기억이다.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작은 것들까지 미친 듯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본 도서는 15세이용가에 맞게 수정&재편집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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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View)

“죽으면, 그때 생각해 볼게.” 끈덕지게 진동하던 휴대전화를 받아 든 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공항. 쭈그려 앉아 얼굴을 묻고 울던 바로 그 여자. 한은 자신의 칵테일바에서 마주친 여자가 낯설지 않은 이유를 떠올렸다. “우리 그럼 같이 있을 수 있어?” 턱을 괸 채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한이 물었다. “글쎄.” 정원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지며 침이 넘어간다. 이건 칵테일 때문일까. 아니면 한의 입술 때문일까? 어쩌면 지난 시간은 너를 내 눈에 담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긴 외로움의 끝에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기까지, 치열했던 정원과 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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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ndness

티끌 하나 없는 하얀 운동화였다. 그 위로 검은 진은 스크래치가 과하다 싶을 만큼 무릎에선 사정없이 찢어진 모양이었다. 잠시 그 사이로 보이는 무릎 뼈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별 생각을 다하고 있지. 참. 옅게 고개를 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굳어져버렸다. 마치 얼음처럼. 그 순간에도 문득 어릴 적 얼음땡 놀이를 하던 그때가 생각났다. 앉은뱅이가 된 어린 그녀는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에까지 그렇게 앉아있었더랬다. 땡 해줄 아이들은 그렇게 바보처럼 앉은뱅이로 그 자리를 지킬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었다. 그렇게 누군가 자신을 건드려 깨워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얼마를 더 그 자리에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멍하니 굳어있던 눈빛이 하얀 티셔츠를 입은 상체를 지나 마침내 닿은 곳에는 절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던 그 얼굴이 선명했다. 짙은 검은 눈이 차가운 빛을 마구 뿜어내며 저를 쏘아보고 있었다. 마치 꿈처럼. “딱 걸렸네. 주희재.”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붉은 입술을 또 멍하니 쳐다보았던가. 그제야 언 듯 굳어있던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랜, 만이야.” 퓨즈가 나간 듯 암전 상태인 머릿속을 고려했을 때, 그나마 가장 그럴 듯한 인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나마 말을 건넸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깨닫기도 전에 그의 손에 일으켜졌다. 그는 그녀의 팔목을 아프게 부여잡은 채 뒤흔들 기세로 힘을 주어 들어올린다. 마치 레이저라도 쏠 듯 지독하게 사나운 눈빛이 여과 없이 그대로 쏟아졌다. 그래서 알았다. 그 인사가 사실은 아주 잘못된, 아주 못된 인사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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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s!(부제 : 내 여자를 위하여)

같이 있을래? 물었을 땐 반반의 마음이었다. 이미 반쯤 취한 여자에게 신사답지 못한 행동인 건 분명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시답지 않은 짓을 즐기는 이도 아니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니면 말고 식은 더더욱 아니었다. 여자가 맘에 들었고 함께 있고 싶었던 이유였다. 붉게 열이 오른 뺨을 만져보고 싶었다.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머금어보고 싶었다. 동물적인 본능이라고만 보기엔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래서 그냥 보내버리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막 헤어져 각자의 객실로 들어가려던 참에 그녀를 불러 세웠던 거였다. “나랑? 당신?” 그 자리에 서서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싫어?” 당연한 거 아니야? 빽 쏘며 돌아설까 조금 조마조마해졌다. 이한조. 아주 골고루 한다. “글쎄….” 답을 늘이며 그녀가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망설이고 있는 거다. “같이 있자.” 툭 던졌다. 잠시 흔들리던 눈이 질끈 감겨버린 눈꺼풀에 가려졌다. 1초 2초 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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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해로운

사랑 같은 거, 믿지 않았다. 그런 건, 절대로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래놓고 바보같이……. 나은은 명목상 남편일 뿐이었던 정을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이혼해요.” 어차피 정해진 끝, 먼저 이혼을 요구했다. 그래야 덜 비참할 것 같았다. 그렇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악마처럼 미소를 흘리며 그녀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나랑 연애하자, 류나은.” 표지 일러스트 : 엑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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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기는 남자

정유인 그때 그 펍, 그리고 그때 그 자리였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15분가량을 걸어 기어이 와버린 그녀. 「여자가 있어? 만나는 여자라든가, 만날 예정인 여자라든가, 그러니까…… 특별한 여자가 진짜 없는 거야?」 데인 하디(씬 자비스) 참을 수 없고, 참기 힘들고, 참아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녀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온 그. 「한 번만 다시 말할 테니까 잘 들어. 만나고 싶은 여자, 만날 예정인 여자, 있어. 특별한 여자도 분명 있어. 그리고 그 세 여자는 바로 내 앞에 앉아 있군.」 -본문 중에서- 「세상에. 파파라치라니.」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녀가 기막히단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만히 그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던 그에게서 큭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길. 파파라치.」 삐딱하게 중얼거린 그가 새하얀 이를 드러낸 채 시원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그를 따라 웃었다. 동그란 눈이 반으로 접히고, 콧등을 살짝 찡그린 채로 그녀는 꽃같이 웃었다. 부드럽게 열린 입술 사이로 핑크빛 혀가 시리게 그의 두 눈을 찔렀다. 어쩌면 그 탓이었던 게 맞나 보다고, 그는 생각했다. 여러 이유를 다 갖다 붙여도 어쩌면 그저 이 여자를 안고 싶었나 보다고. 그게 실은 더 먼저였던가 보다고. 「왜, 요?」 순식간에 변해 버린 눈빛에서 그녀는 위험을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에게 잡혀 있던 손을 빼냈다. 그리고 그에게서 살짝 눈을 비낀다. 「그러지 마.」 자그마한 턱을 쥐었다. 까만 눈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차라리 그렇게 흔들려 주는 것이 더 고맙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뭐라고 말할까. 그제야 단호하게 그런 뜻이 아니라고 쏘아붙일지 모를 일이다. 「미안.」 그는 미리 사과했다. 「무슨…….」 참을 수 없을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입술을 삼켜 버렸다. 동그랗게 커졌던 눈이 질끈 감김과 동시에 꼭 쥔 주먹을 펴고 그녀가 그의 허리를 감았다. 그렇게 키스했다. 돌아 버릴 것처럼 뜨겁고, 멈추고 싶지 않을 만큼 달콤한. 그런 키스였다. 바야흐로 그의 첫사랑이 시작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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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 페스트

에피루스 베스트 로맨스 소설! 어느 순간, 딱 드는 생각이었어. 내내 신경을 쓰이게 만들더니만, 딱 그런 생각이 들어버리더라. 잡아야지. 저 여잘 잡아버려야지. 그러면서도 늘 무심하던 여자가 나에게만은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왜 그딴 생각을 했을까. 내가 뭐라고. 내가 그렇다고, 원영이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는데 말이야. 근데 그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인정이 안 된단 말이지. 나에게 이런 욕심이 있는 것이 놀라울 만큼 원영이, 티끌 하나까지 다 갖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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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여신

“실은 겁났어. 너도 나를 떠날까 봐. 그래서 자꾸만 숨었어. 자꾸만 피했어. 이미 인정한 마음인데도 그거 숨기고 싶었어. 알면, 떠나 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겁났어. 무서웠어.” 사랑임을 알면서도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었을 만큼 상처가 컸던 그녀, 은주연. 그녀가 다시금 사랑을 말한다. “사람이…… 이상해져 버려. 정말 어이없잖아, 이러는 거. 근데 자꾸만 나도 모르게 그래. 앞뒤 잴 줄도 몰라. 그냥 막 달려. 멈추고 싶었던 적도 많았는데 그럴 수 없었어. 자꾸만 나를 밀어낼 때도 악착같이 끌어안고 싶었어. 놓으면 죽을 것 같았어, 내가. 온통 주연이야. 세상이 다 그 녀석이야. 이런 게…… 말이 돼?” 사랑이 뭔데? 하던 그, 이초황. 그가 사랑을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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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의 연인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만, 난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낼 생각 따윈 없어. 그러니까 날 설득하려고 들지 마. 난 너랑 있어. 그럴 거야. 너는 모르겠지. 내 시간과 네 시간이 함께 흐르지 않을 거란 걸. 그 언젠가 네 시간이 멈추고, 넌 내 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끔찍하겠지. “불쑥불쑥 내가 모르는 너의 그 10년에 화가 치밀어. 어여뻐 미치지, 싶다가도 죽도록 다그치고 싶어지지. 돌았나 싶게…… 정신이 산란해.” -본문 중에서- 젠장.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겨 나왔지? 한 번만 더 제 앞에 나타난다면 단단히 경고를 해두어야 할 것 같다. 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바짝 말라 뽀득거리던 모래사장은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어느새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밟히기 시작했다. 제 발에 밟혀 서걱거리는 모래를 힐끗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순간 그는 우뚝 그 자리에 서버렸다. 저 여자를 알고 있다. 저런 칠흑 같은 머리칼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제 눈이 확인한 것이 사실이라면, 현실이라면 말이다.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의 뒤로 깊게 패인 발자국이 길게 그를 뒤따랐다. 서걱거리는 소리 따윈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너……!” 팔을 홱 잡아 돌리자 놀란 듯 커진 눈이 그를 향했다. 빌어먹을. 이건 현실이어야만 한다. 수백 번 꾸었던 꿈이 절대로 아니어야 할 것이다. 사나워진 그의 눈이 그녀의 얼굴 위를 굴렀다. “너!” “오랜, 만이야.” 이보다 어색한 인사가 있을까. 환은 기가 막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이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미친 듯이 뒤흔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0년이야. 오랜만이야? 감쪽같이 사라진 주제가 오랜만? 애써 미소를 짓는 얼굴은 측은하기 그지없다. 춥지도 않으면서 딱딱 부딪치는 것 같은 제 이처럼. “변명 쯤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꽉 쥐며 그가 그녀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변명이 먹힐 시간은 아니잖아.” “그럼 뭐가 먹힐 시간인데?” 사납게 쏘아보는 시선에 주눅이 들만도 한데 수연은 어느새 잔잔했고, 담담했고, 차분했다. 비위가 틀렸다. 고작 인간여자 따위가! 그의 손이 가녀린 목을 틀어쥐었다. 그제야 분위기 파악이 되는 건지 수연의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찾아서 죽여 버릴까…… 도 생각했었어. 변명이 먹힐 시간이 아니라고?” “그렇게 떠난 건 미안.” “그건 변명이 아니잖아.” 목을 틀어쥐었던 손이 스르륵 미끄러져 그녀의 어깨를 쥐었다.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자, 수연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뿐,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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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愛(연애)

“주은아.” 그가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괜히 울컥 무언가 치밀었다. “주은아.” 또 그가 그녀를 불렀다. 주은은 버릇처럼 두 손을 맞잡고 이리저리 비틀어댔다. 후우. 태윤의 입에서 기다랗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모질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두 눈이 똑바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못하겠다. 이런 거.” 한숨 섞인 그의 음성이 가슴을 그었다. 꾸역꾸역 참았던 게 그어진 가슴에서 후드득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은은 물기가 어른어른 거리는 눈으로 태윤을 쏘아보았다. “하기 싫다. 이딴 거.” 기어이 흔들고 말지.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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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하게

6개월을 매달려 따낸 전시회, 누군가 그걸 가로챘다. 그리고 이어진 황당한 제안. 나더러 전시 컨설팅을 하라고? “안녕하세요, 전무님. 아트센터 드리움에서…….” “어서 와요. 유해이 씨.” 그다. 표현재. 11년 전, 그녀의 약혼자였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녀의 남편이어야 할 남자.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하면 너 감당 못 할 텐데? 일이든, 또 딴 거든.” 빡빡한 클라이언트처럼 굴던 그가 그녀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난 내 약혼녀를, 내가 원할 때 그 어느 때라도 만날 수 있어.” 그리고 밝혀지는 그녀만 몰랐던 진실. 해이는 현재의 말처럼 11년 동안 지속된 이 약혼을 끝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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