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의 응급이었다. 뛰어들어오는 응급 대원의 외침에 ER(응급실) 문이 급히 열렸다. 스트레치카(환자용 이송 침대) 위에는 몸을 웅크린 남자가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응급입니다. 28세 남자 환자, 야구 경기 중 강습 타구에 맞았습니다. 고환 손상과 음경 골절 의심됩니다.” “이런, URO(비뇨기과) 콜 넣어! 당장!” “으! 으앗!” 순간 남자가 미친 듯이 소리치며 짐승처럼 허리를 뒤틀었다. 소란으로 왈칵 뒤집힌 응급실이었다. 순간 하얀 가운을 입은 주치의 서가을 교수가 나타났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두 아는 얼굴이네요.” “네. 메이저리거 국민 투수 지강혁 선수입니다. 타자가 친 직선타구가 고환에 꽂혔다고 합니다.” 초음파를 확인 한 후 즉시 응급 수술이 시작되었다. “Hydrocele(음낭 수종)나 Varicocele(덩굴 정맥류)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좌측 고환 정맥 내 Thrombus(혈전) 의심됩니다.” 수술을 집도할 부위가 드러나며 단단히 고정되었다. 순간 수술실 스태프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헉! 이게 무슨 일이죠? 실물로 본 사이즈 중 최고예요. 진짜 이름대로 지상최강이네.” “확대술 샘플로 기록이라도 남겨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가을 역시 잠깐 말을 잃고 말았다. 수련의 때부터 숱한 환자를 맡아 왔지만, 정말이지 인체에 붙어있기 불편하겠다고 느낄 정도의 사이즈였다. 가을은 산만해진 정신을 모아 차리고 스태프에게 당부했다. “모두 놀라신 건 알겠습니다만, 이제 수술에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맥 결찰부터 시행하고, 정관도 많이 부었네요.” 후우, 한숨을 뱉은 가을이 조금 망설였다. “젊은 분인데 절단은 조금 가혹하군요. 어차피 정관은 막힐 것 같으니 Vasectomy(정관수술) 묶어서 병행하도록 하죠. 회복 후 복원술을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파내지 않고 묶으시게요?” “경과를 보고 풀더라도 일단 묶는 게 좋겠습니다.” “Vasectomy(정관수술) 준비할까요?” “재수술 시 풀어드려야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메스를 다잡은 가을이 남자를 묶기 시작했다.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30.94%
평균 이용자 수 309 명
* 100명이 선택하면 '명작' 칭호가 활성화 됩니다.
'명작'의 태양을 라이징 해보세요.
공항에서 피아노를 친지는 오래되었다. 피아노 치는 일은 급여가 괜찮았고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여러 핑계를 대며 거를 수 없는 중요한 아르바이트였다. 하지만. “서하야, 미안해. 미안한데, 저 여자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너 나 몰라?” “한준서. 넌 아무것도 아닌 여자랑 섹스하니?” 믿었던 남자친구가 배신을 했던 날. 오늘만은 정말,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피아노와 씨름하고 있던 도중, 신청곡이 들어왔다. 쇼팽 소나타, 그것도 3번. 꼬맹이가 쇼팽 소나타를 아는 건 기특했지만 조금 망설였다. 예고 시절 난 이 곡을 ‘쓰리고’라고 불렀다. 어렵고, 괴롭고, 숨차고. 내가 이 곡을 완주하면서 클래식을 완전히 포기해버렸다는 걸 이 아이는 알까. 어린 눈에 서린 기대의 빛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악보를 열었다. 여전히 참, 치고 싶지 않았다. 몇 마디나 두드렸을까. 하얀 악보 위로 어둑한 그늘이 내렸다. “치기 싫으면 치지 마.” 선글라스를 쓴 한국인 남자였다. 역광인 데다 모자까지 눌러 써서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각이 진 넓은 어깨와 훌쩍 키가 큰 남자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그따위로 칠 거면 때려치우라고. 내 말이 어렵나?” “그쪽이 뭔데 그런 말을 하세요.” “첫마디부터 틀렸어. 틀려먹었다고.” 따질 힘조차 없어 조용히 악보를 덮었다. “잘 생각했어. 쇼팽 소나타는 그렇게 치는 거 아니야.” 미련 없이 피아노 뚜껑을 닫고 일어섰다. 그대로 돌아서자, 뒤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발목이 붙잡혀버렸다. 쇼팽 소나타 3번 1악장. 첫 소절의 다섯 음. 솔파레시 그리고 파. 단호하고 명료한 다섯 음이 귓전을, 아니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 남자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부드럽고 우아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피아노를 치던 그의 손길이 뚝 멎었다. “손은 거지 같아도 귀는 열려 있나 보네.” “저, 저기. 그러니까.” “이제 알아봤어?” “설마.” 그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피아니스트 강건우입니다.” 《더티 클래식》
뼈를 위해 태어난 뼈 선생, 정형외과 레지던트 1년 차 정이현과 일반외과 천재 잘드(잘생긴 너드) 백도준 교수의 달달하고 뜨거운 메디컬 로맨스. <본문 발췌> “벚꽃의 꽃말을 알려드린다고 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그럼요. 검색하지 않고 기다렸어요.” “벚꽃의 꽃말은 순결 그리고 절세 미인입니다. 정이현 선생처럼요.” “아, 제가 절세미인 이런 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요.” “제 눈엔 세계에서 가장 순결한 절대적 아름다움을 가진 분입니다.” 예상보다 몇 배는 더 간지러운 그의 고백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이렇게까지 로맨틱한 멘트는 처음이라 민망함에 귀밑까지 붉어졌다. 역시나 예측불허 백도준은 그녀에게 수줍을 새도 주지 않았다. “여기 서류를 확인해보시죠.” “서…류요?” 그는 주섬주섬 가방을 열더니 문서를 꺼내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종이는 총 5장.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강남의 아파트와 상가 등의 등기부등본 그리고 그의 건강검진 결과서였다. “이쪽 북문에서 잘 보입니다. 저쪽이 제 건물들이 위치한 방향이군요.” “지금 강남에 건물 있다고 자랑하시는 건가요?” “제가 한때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을 두어 돈을 좀 벌었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소유한 모든 부동산의 명의를 이전해 드리겠습니다.” “네? 아니 왜 강남 더빌 명의를 저한테 이전해요!” “정 선생에게는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족하시다면 다른 지역을 알아봐서….” “잠시, 잠시만요!” 정말이지 너무 앞서가는 남자의 고백에 어지러움까지 몰려들었다. 겨우 혼미한 정신을 붙들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교수님! 이렇게 막 혼자 직진하지 마시고.” “사랑합니다.” 툭, 심장이 주저앉았다.
“2년만 살 맞대고 작품 하나 만들어 봅시다.” 오만한 남자의 시선이 그녀를 느리게 훑었다. 청각 장애를 지닌 천재 조향사 연우. 고요하던 그녀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려고 이렇게 사람을 홀려.” 잔향이 짙은 남자의 흔적. 6년 전보다 더 깊어진 낯설고도 뜨거운 욕망. 강태주를 만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괴로움. 마침내 그의 손을 잡았을 땐. “감당할 수 있겠어요? 내가 좀, 거친데.” “괜찮아요. 대표님이니까.” “그럼 감당해 봐. 남자를 홀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후였다.
“짐승도 새끼는 안 버려.” 첫눈에 반한 남자와 정략결혼을 했다. 대선 후보의 딸과 내로라하는 그룹 총수의 서자.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감히 행복하다 말할 수 있었다. 「다음에 유산할 땐 빨간 옷 입으라고. 난 그날 본 피 때문에 트라우마까지 생겼잖아.」 그녀의 시어머니가 붉은 드레스를 집어 던지기 전까지는. “이혼해요, 권이준 대표님.” 아이를 잃은 슬픔, 아버지의 실종, 시어머니의 학대. 그 모든 걸 떠나, 늘 제 곁에 부재하는 남편을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다시 그의 아이를 품었다 할지라도. 그러나, “아이는 어쩌고 이혼이야.” “당신 아이 아니에요.” “붙어먹은 새끼가 누군데. 또 권현석인가.” “네.” 그 모진 말 끝에서도 그는 오만히 조소했다. “상관없어.” “…네?” “누구 씨든 네 배 속에 있으니 내 새끼라고.” 벗어날 수 있으면 벗어나 보란 듯. “이혼은, 없어.” 광기 어린 눈으로 채원을 바라볼 뿐.
“그 자식 보라고 꾸미는 거야? 너무 예쁘잖아.” “도준 씨 오늘 관객이 수만 명이야. 강건우가 나를 어떻게 봐요. 질투가 귀엽긴 한데 이제 좀 무섭거든요?” “그래도 보고 있으니까 열 받아서. 정이현, 대충 준비해.” 그가 화장대에 걸터앉아 화장하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슈트를 차려입은 도준은 더없이 멋있었다. 뭘 또 저렇게까지 근사한가.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덜컥이는 심장을 애써 외면하며 난 조용히 일어섰다. 도준이 문 앞을 가로막았다. “이현아, 그 자식한테 안 가면 안 돼?” “세상에. 누가 들으면 바람피우러 가는 줄 알겠네. 빨리 팔짱이나 껴요.” 도준의 질투에 아련했다. 가슴께가 간질거리면서도 조금 아팠다. 서로의 감정에만 흠뻑 빠진 채 마주 보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그저 남자와 여자로서만 지낸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에게 보이는 말도 안 되는 질투조차도 무척 반가웠다. 장난을 치고 웃고 후미진 골목길 구석에서 키스도 하며, 우린 베를린의 거리를 함께 걸었다.
후궁이 없었던 조선의 군주 현종 이연. 그에게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하나뿐인 왕후 윤설이 미래에서 온 여인이라는 것. 심지어 외과 의사라는데...?! 제1권. Y대 GS펠로우 1년 차 윤설. 세미나 참석차 방문한 북경에서 낯선 할머니로부터 비녀를 건네받은 그녀. 의문의 비녀를 타고 조선 시대로 회귀하게 되는데... 내가 조선의 왕후라고? 그리고 아이돌같이 생긴 저 조상님이 내 남편 현종? 갑자기 떨어진 조선 땅에서 운명의 남자 현종을 만나 펼쳐지는 쾌활발랄 로맨틱 사극 스토리! 제2권. 천계가 무너져 경신대기근이 일어나고 눈물로 현종과 이별한 후, 현생에서 다시 만난 연의 환생 차도현. 그런데 부둥부둥 온미남 전하는 어디 가고 싸가지 없는 냉미남 차도현이 지도교수가 되어 설을 괴롭히는데... 전생의 비밀을 간직한 설과 아무것도 모르며 그녀에게 홀딱 빠져드는 까칠남 차도현의 메디컬 휴먼 러브스토리!
*본 도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은 모두 허구이며 특정인이나 단체, 상황과는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꼴에 여자라고 뭐 하는 수작이야.” 바다에 오빠를 묻고 해군에 몸을 묻었다. 그렇게 천재 해커 설이 되어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 잠입했는데. 사건의 열쇠를 쥔 남자의 포로가 되었다. 미 해군의 크레이지 함장 알렉 초이, 이 미친 제독에게 산 채로 붙들렸다. “쓸모를 증명하겠습니다. 제독님의 포로가 되게 해주세요.” “더 줄건 없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살아야 했고 매달려야 했다. 그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커다란 손이 설아의 턱을 붙잡았다. 지그시 다물린 입술이 느리게 열렸다. “벗겨봐. 그 최선, 구경이나 해주지.”
“이 순간에도 너한테 미쳐 있는 내가 돌았지.” 그래서, 언니랑 붙어먹다가 결혼은 동생이랑 해라?” 노골적인 주혁의 말에 시선이 들렸다. 10년 넘게 마음에 품었던 첫사랑 차주혁, 이젠 VVIP 환자일 뿐인 그의 주치의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서원 그룹에서 병원 쪽으로 혼담이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은지를 마음에 두고 계시구요.” “계약은?” “애초에 대표님의 수면장애 치료가 목적인 계약이었습니다.” “잠만 자는 계약이라 결혼은 싫다?” 욕을 짓씹는 남자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서윤은 전방을 응시한 채 무감한 표정으로 주혁을 바라보았다. 한서윤은 가짜니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심장에서 서걱거렸다. 넥타이를 침대에 내던진 주혁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자기로 했으면 자야지, 벗어.”
“넌 사람을 미치게 해.” ‘클래식계의 아이돌’ 피아니스트 한이수. 차기 대선 후보인 할아버지의 명령에 자조하듯 맞선 자리에 나가고, 태강 그룹 강태하 대표와 결혼할 상황에 처한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이수는 태하에게 계약을 제안하는데. “1년 정도 약정의 계약 결혼이 어떨까 합니다.” “1년? 계약? 하, 지금 악기 삽니까?” “제가 피아니스트이니 악기를 구매한다고 생각하셔도 좋겠네요.” 하, 바람 빠진 소리를 내던 태하의 고개가 삐뚜름히 기울었다. “악기라고 생각하고 사라면서요. 그 악기 내가 사겠다고.”
뼈를 위해 태어난 뼈 선생, 정형외과 레지던트 1년 차 정이현과 일반외과 천재 잘드(잘생긴 너드) 백도준 교수의 달콤하고 뜨거운 메디컬 로맨스. 본문 발췌 “정말 더는 못하겠어요.” “몇 번 안 했는데 OS(정형외과)는 지구력이 떨어지는군요.” “지금 전공 따지시는 거예요? 약간 치사하신데요. 근성 있게 한번 버텨볼까요.” “네. 과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신다면 제가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다리를 조금 더 넓게 벌려주세요.” “아, 아니!” 다시 활짝 열린 다리 사이로 제 페니스를 단번에 내리꽂는 남자의 색정적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말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OS(정형외과)가 근성이 없다지 않는가. 최선을 다해서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고 힘껏 당겨보았다.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짙은 눈썹을 한번 꿈틀대더니 미간을 깊이 조였다. “이러시면, 하.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군요.” “가만히 계셔도 터질 것처럼 조이는데, 후.” OS(정형외과)의 명예는 지켜진 듯했고 정이현에게는 음란 마귀가 들어온 것 같았다. 하나둘 그의 지시대로 혹은 몸이 시키는 대로 기술을 연마하며, 이현은 오늘 밤이 술에 취한 채 이루어진 원나잇이라는 것조차 완전히 잊어버렸다. 마음껏 음란해도 좋을 미친 쾌감의 밤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요. 저 이제는 무서워지려고 해요.” “무서운 것은 아닙니다.” “웬만하면 해드릴게요. 우리 오늘 별거 다 했잖아요.” 어떤 체위에서도 온갖 요사스러운 행위를 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더티토크를 뱉던 도준이 뜸을 들이자 조금 궁금해졌다. 또 뭘 시키려고. “저의 뼈를 핥아주시겠습니까?”
남자는 무심히 웃었다. 여린 바람 끝에 흩어지는 미소를 본 나는 더 참기 어려워졌다. 미치게 이 테오도르라는 이국의 남자를 가지고 싶었다. 포토그래퍼로서. 하여 대시를 먼저 한 쪽은 오히려 내가 되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초면에 이런 말 미안한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머릿속을 맴도는 미친 소리를 입 밖으로 뱉고야 말았다. “Can I take your nude picture tonight? (오늘 밤 당신의 누드를 찍어도 될까요?)” “…….” 남자의 침묵에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잠깐만 한우주. 잠깐. “보기보다 겁이 없네.” “아, 잠시만 제가 설마, 설마 내가 진짜 말을….” “설마 맞아요. 누드 찍자고 방금 말했어. 여자가 남자에게 밤 12시 10분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뭐라고 지껄인 거야?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진짜 누드 찍자는 말을 입 밖으로 냈다고? 이 또라이 한우주. 아, 정말. 그러니까 지금 한우주는 오늘 처음 보는 남자에게 누드를 찍자고 말한 거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포토그래퍼 한우주라고 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 쪽에게 이끌려 사진을 찍었고 실례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업무 모드로 돌입해 급히 사과하고 핸드백을 챙겼다. 서둘러 달아나려는 발걸음이 뚝, 그의 목소리에 멈추었다. “한다고 하면?” “네?” “당신이 원하는 누드, 찍는다고.” 돌아선 내 앞으로 그가 느릿하게 다가왔다. 그리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한우주만큼 또라이같은 말을. “같이 벗어.” “네? 그게 무슨….” “그쪽도 벗고 찍으라고. 그래야 공평하지.”
“2년만 살 맞대고 작품 하나 만들어 봅시다.” 오만한 남자의 시선이 그녀를 느리게 훑었다. 청각 장애를 지닌 천재 조향사 연우. 고요하던 그녀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려고 이렇게 사람을 홀려.” 잔향이 짙은 남자의 흔적. 6년 전보다 더 깊어진 낯설고도 뜨거운 욕망. 강태주를 만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괴로움. 마침내 그의 손을 잡았을 땐. “감당할 수 있겠어요? 내가 좀, 거친데.” “괜찮아요. 대표님이니까.” “그럼 감당해 봐. 남자를 홀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후였다.
남자는 무심히 웃었다. 여린 바람 끝에 흩어지는 미소를 본 나는 더 참기 어려워졌다. 미치게 이 테오도르라는 이국의 남자를 가지고 싶었다. 포토그래퍼로서. 하여 대시를 먼저 한 쪽은 오히려 내가 되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초면에 이런 말 미안한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머릿속을 맴도는 미친 소리를 입 밖으로 뱉고야 말았다. “Can I take your nude picture tonight? (오늘 밤 당신의 누드를 찍어도 될까요?)” “…….” 남자의 침묵에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잠깐만 한우주. 잠깐. “보기보다 겁이 없네.” “아, 잠시만 제가 설마, 설마 내가 진짜 말을….” “설마 맞아요. 누드 찍자고 방금 말했어. 여자가 남자에게 밤 12시 10분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뭐라고 지껄인 거야?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진짜 누드 찍자는 말을 입 밖으로 냈다고? 이 또라이 한우주. 아, 정말. 그러니까 지금 한우주는 오늘 처음 보는 남자에게 누드를 찍자고 말한 거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포토그래퍼 한우주라고 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 쪽에게 이끌려 사진을 찍었고 실례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업무 모드로 돌입해 급히 사과하고 핸드백을 챙겼다. 서둘러 달아나려는 발걸음이 뚝, 그의 목소리에 멈추었다. “한다고 하면?” “네?” “당신이 원하는 누드, 찍는다고.” 돌아선 내 앞으로 그가 느릿하게 다가왔다. 그리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한우주만큼 또라이같은 말을. “같이 벗어.” “네? 그게 무슨….” “그쪽도 벗고 찍으라고. 그래야 공평하지.” 외전 “태어나줘서 고마워. 우주야, 한국으로 가자.” “설마, 저거 전용기니?” 남편에게 One Universe(한우주)가 새겨진 전용기와 한국 여행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겨울 바다의 길을 따라 7번 국도를 여행하는데…. “저게 뭐야? 진짜 성이야?” “러브모텔.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K-모텔이지.”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둥그스름한 지붕에 핑크빛 건물을 바라보며 테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호텔이 아니라 저런 곳에서 자자고?” “나 사실 궁금해.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 “그래? 우주가 하자면 해야지. 근데 좀 낯설다?” 치렁치렁 길게 늘어진 초록색의 천막을 헤치고 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실내에 들어가자마자 테오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호기심 서린 눈길로 한글을 읽어내렸다. “숙박 6만 원, 대실 3만 원? 대실이 뭐야?” “그거만 하고 나가는 거.” “와, 노골적인데? 섹스의 나라 대한민국이야?” 깜짝 놀란 남자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고스란히 모텔 주인아저씨에게로 옮겨갔다. “외국인이네요? 대실 하실 건가요?” “아니, 숙박이요. 대실은 부족하죠.” 새초롬하게 앞장서는 나를 테오가 성큼 따라붙었다. 와락 등 뒤에서 허리를 감아 안곤 방안으로 들어섰는데, 방을 보자마자 우린 할 말을 잃어버렸다. 테오는 신기한 듯 K-모텔의 위엄 서린 방을 구경하며 내 손을 잡았다.
삶을 움켜쥔 남자 서진우, 죽음을 준비하는 여자 한이수. 한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인 진우는 여행지에서 낯익은 분위기의 이수를 만나 홀린 듯 끌려 밤을 함께 보낸다. 진우는 운명이라 느꼈으나 이수는 그의 곁을 떠나고, 다시 병원에서 주치의와 환자로 만나며 죽음과 맞선 처절한 사랑이 시작된다. *** “열어! 오픈 카디악(개흉 후 직접 심장 마사지) 준비해.” “야! 서진우. 의미 없어. 제발 그만해. 보내 주라고!” “시끄러워. 메스!” 퍼스트 어시도 PA(수술보조)의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고인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는 진우의 행위에 아무도 동참할 수 없었다. “진우야. 이수 씨 보내줘. 그만하라고. 너 이거 아집이고 집착이야. 이수 씨가 원하는 게 아니라고!” “비켜. 아직 안 죽었어.” “진우야. 제발!” “여기서 동맥 자상으로 서진우 시체 치우고 싶지 않으면 열어.” 아무도 집어주지 않는 메스를 직접 든 진우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빠르게 가슴의 한가운데 붉은 줄을 긋고 흉부를 갈랐다. 보다 못한 PA 선생이 다가와 리트랙터(절개 부위를 벌리는 도구)를 대어주었다. 멈춰버린 심장은 이미 제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늘 잡았던 그녀의 손끝처럼 차가워지려 한다. 진우는 뜨거운 손아귀로 심장을 움켜쥐었다. ‘아직은 안돼. 우리 이제 시작했잖아. 이수야 가지 마, 제발.’
공항에서 피아노를 친지는 오래되었다. 피아노 치는 일은 급여가 괜찮았고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여러 핑계를 대며 거를 수 없는 중요한 아르바이트였다. 하지만. “서하야, 미안해. 미안한데, 저 여자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너 나 몰라?” 믿었던 남자친구가 배신을 했던 날. 오늘만은 정말,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피아노와 씨름하고 있던 도중, 신청곡이 들어왔다. 쇼팽 소나타, 그것도 3번. 꼬맹이가 쇼팽 소나타를 아는 건 기특했지만 조금 망설였다. 예고 시절 난 이 곡을 ‘쓰리고’라고 불렀다. 어렵고, 괴롭고, 숨차고. 내가 이 곡을 완주하면서 클래식을 완전히 포기해버렸다는 걸 이 아이는 알까. 어린 눈에 서린 기대의 빛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악보를 열었다. 여전히 참, 치고 싶지 않았다. 몇 마디나 두드렸을까. 하얀 악보 위로 어둑한 그늘이 내렸다. “치기 싫으면 치지 마.” 선글라스를 쓴 한국인 남자였다. 역광인 데다 모자까지 눌러 써서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각이 진 넓은 어깨와 훌쩍 키가 큰 남자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그따위로 칠 거면 때려치우라고. 내 말이 어렵나?” “그쪽이 뭔데 그런 말을 하세요.” “첫마디부터 틀렸어. 틀려먹었다고.” 따질 힘조차 없어 조용히 악보를 덮었다. “잘 생각했어. 쇼팽 소나타는 그렇게 치는 거 아니야.” 미련 없이 피아노 뚜껑을 닫고 일어섰다. 그대로 돌아서자, 뒤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발목이 붙잡혀버렸다. 쇼팽 소나타 3번 1악장. 첫 소절의 다섯 음. 솔파레시 그리고 파. 단호하고 명료한 다섯 음이 귓전을, 아니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 남자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부드럽고 우아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피아노를 치던 그의 손길이 뚝 멎었다. “손은 거지 같아도 귀는 열려 있나 보네.” “저, 저기. 그러니까.” “이제 알아봤어?” “설마.” 그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피아니스트 강건우입니다.” 《더티 클래식》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하르방 비누를 욕실에 진열하곤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진심 민망한 자태였다. 지나치게 길고 가운데가 불룩한 데다 울퉁불퉁하기까지 했다. 왼쪽으로 조금 휜 앞머리가 집시 여자의 말처럼 실하고 듬직했다. 오빠 친구면서 대표님인, 그러니까 우리 회사 CEO이자 첫사랑인 차도혁이 들이닥친 건 그때였다. “근데 이건 뭐야, 딜도?” 양손에 하르방을 든 그의 눈동자에 광채가 일었다. “이야, 우리 하루 그렇게 안 봤는데.” “아니야, 그거 아니에요!”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컸어. 기특해서 그래, 인마.” 지역 특산물이잖아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재라고요, 네? 휙, 그의 손에 들린 핑크색 하르방을 뺏으려 손을 뻗었지만 어림없었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의 손은 이미 천장에 닿아 있었다. “무려 열두 개야. 이하루 남친이 열둘이나 된다고.” “이리 주세요, 빨리요!” “뺏어 보던가.” 예상은 했지만 장난치듯 놀리는 동작에 오기가 일었다. 기어이 뺏고야 말겠다는 일념에 하루가 욕조를 밟고 일어섰다. “어, 자, 잠깐만!” “이하루!” 쿵, 넘어진 그녀의 머리가 세면대에 세게 부딪혔다.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는 걸 느끼며 헛웃음이 흘렀다. 하르방 언니. 앞으로는 다 잘될 거라면서요. 소원이 이루어진다더니 이 꼴이 다 뭐예요. 십오 년 짝사랑한테 딜도 쓴다며 기특하다는 말까지 듣고 말았다. 아…. 쓰러질 때 쓰러지더라도 하르방은 챙겨야지. 하루가 마지막 힘을 내어 손을 뻗었다. 드디어 그녀의 손바닥에 묵직하고 듬직한 하르방이 닿았다. 그녀는 힘을 주어 그걸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하르방이 왜 이렇게 뜨거워? 그리고 더 커진 것도 같고, 아니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점점 눈앞이 캄캄해지며 의식이 흐려졌다. “오빠… 하르방…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래, 그거 아니야.”
* 본 도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은 모두 허구이며 특정인이나 단체, 상황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특수부 명칭이 반부패 수사부로 현재는 바뀌었으나, 작품의 가독성을 위해 특수부 명칭을 그대로 사용 하는 점도 안내드립니다. 복수를 위해 버텼고 응징을 위해 검사가 되었다. 완벽한 프레임 속에 함정을 파고 철저히 짓밟을 작정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예고했던 대로 각오하고 와요. 불공정 거래가 벌써 두 건이야.” “또 마음대로 기소하려구요?” “이번엔 유예 없습니다. 너 더럽힐 거야.” 엇갈린 감정으로 서로를 욕망한다. 운명이 그들을 삼키는지도 모르는 채.
세계의 끝에서 봄을 만나다. 세상의 끝으로 도망친 여자 한은설, 세계의 끝으로 쫓겨간 남자 서강후. 절망의 끝에서 마주한 단 하나의 사랑 *** 사망할 뻔했다. 한은설 때문에. 쾌감에 몸이 바스러질 뻔했다. 진심을 삼키며 손을 뻗어 그녀의 여흥을 훑어내린다. 파리한 여자의 경련을 손끝으로 매만지다 문득, 처음이라는 여자의 말이 궁금해진다. 처음을 가졌다는 유치한 오만이 우스워 픽 무심히 웃는다. 그 웃음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자도 함께 웃는다. 미소가 이렇게 다정한데 잘 웃지 않아 아쉽다고 말하자, 조금 더 웃어 보인다. 미소의 끝을 물어 입술에 머금었다. 맞닿아 섞인 숨이 따뜻하다. “어떻게 지금까지 남자랑 안 잤어. 오늘 나하고 하려고?” 장난처럼 물어본다. 사실은 궁금해서. 서른이 다되도록 뭐 했냐, 마음에 없는 타박을 늘이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눈을 꼭 맞추고 붉은 양 뺨을 어루만진다. 수줍은 미소가 여자의 눈가에 일렁이면 속눈썹 위에 입을 맞출 생각이었는데. 은설의 얼굴이 굳어갔다. 더는 웃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공허하고 투명한 눈동자가 아련하다가 처연히 변하고, 이내 선득해졌다. 칠 년 전, 어린 날의 구체관절 인형으로 돌아갔다. “섹스 같은 걸 하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영원히 안 하려고 했다고?” “섹스든 사랑이든 그런 건 안 하려고 했어요. 죽을 때까지.” “어째서.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그녀의 눈동자가 거칠게 출렁인다. 검은 동공 위에 여러 빛깔의 감정이 스치고 스민다. 곧 빛이 켜지고 불이 일었다. 그러다 곧 꺼져버렸다. 다시 무감한 인형의 눈동자로 은설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을 끊어 그에게 답했다. “나에게는 사랑도 섹스도 죄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