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그늘에서
작가블루닷(blue 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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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오랜 역사를 지녔던 ‘환국’의 왕정이 붕괴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태동기. 그 혼돈의 시대를 지휘하는 자는 바로 무반 운종루의 젊은 가주, 이휘. 그는 누구보다 빨리 변화의 흐름을 읽고 재물을 모아 거부가 되었고 환국의 새로운 의회도, 새로운 왕도 두려워하는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몰라야만 한다. 그가 가진 가장 귀중한 보물이 죽었다고 알려진 환국의 마지막 공주 '이화'라는 것을. 공주였다는 기억마저 잃은 채, 제 여종인 '예화'로서 살아가는 그녀를 그가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히 품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제 공주를 누구에게도 내어줄 수 없다. “예화 말일세. 종년치곤 입성이 꽤 좋아 보여. 아무리 운종루의 위세가 대단하다지만, 종년이 비단옷에 금실 댕기라니. 자네는 저 아이에게 꽤 관대한 주인인가 봐?” 그녀의 옛 정혼자가 주위에서 얼쩡댄다고 해도. “내 정혼녀도 아마 예화 나이와 같을 걸세. 올해 스물하나가 되었고, 예화처럼 눈이 아름다웠지. 백옥같은 피부에 가만빛을 풀어놓은 비색처럼 잊기 힘든 눈동자라, 뭐 하나 다르지 않으니 저 아이에게 저절로 시선이 가지 않겠나.” “더는 못 들어주겠군. 정혼자는 잘 찾아보게. 그러나 내 종년은 사사로이 불러내지 말도록.” 복권된 새 왕실에서 실종된 공주를 찾아 헤매도. “그 종년이 자네에게 특별한가 본데?”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내 종년 아닌가.” 배꽃보다 희고 매화보다 붉어 곱디고운 예화는 오롯이 그만의 것이기에. [작품 중에서] “그리 단속해도 음전치 못하고 사내를 홀려 대니 성가셔.” 그는 눈물이 차오른 발그레한 눈가를 혀끝으로 핥았다. “종년이 이리 혀 놀림이 음탕하니, 네 주인이 밤잠을 설치는 것이다.” 예화는 입안에 가득 담긴 정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삼켜야지.” 고매한 선비라 칭송받는 주인이 고집스럽게 요구했다. 예화는 눈을 질끈 감고 미지근한 정을 삼켰다. 그 모습을 주인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팟 하고 끊긴 것처럼 낯선 모습으로 응시했다. 눈빛이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백야산에 산다는 맹수처럼 사나운 시선이었다. “좆 달린 새끼들이 네게 원하는 게 뭔 줄 아느냐?” “……으흡!” 휘는 다시 허리를 쳐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네 치마 속을 어찌하면 들출지 그 생각밖에 없거든.” 휘의 눈빛은 풀지 못한 욕정으로 사나웠고, “네가 몸을 열어야 하는 사내는 나뿐이다.” 서산에 떠오른 달빛이 매화꽃 그늘에 걸려들 때까지 휘는 예화를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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