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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 밀로, 그녀의 옛사랑이 돌아왔다. 신시가 홀로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우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곳 포트 메리로. “신시, 넌 나를 한 번이라도 그리워한 적이 있어?” 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삶이 고달팠던 그녀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를 밀어내려 하지만 그들의 끈질긴 인연은 어쩐지 더욱 꼬여만 가는데……. 신시는 모두를 위해 끝까지 잔인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내 몸을 원하는 거잖아.” “너한테는 그게 쉬워?” “사내들이 원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아무리 신사인 척하고, 귀족인 척해 봤자야.” 신시는 충격을 받은 듯한 레이지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네 첫사랑이란 여자가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 * * * “왜 나를 속였어?” 그의 가까이에 가자 술 냄새와 그의 향취가 섞인 향기가 났다. 그것이 신시의 가슴을 설레게도, 아프게도 만들었다. “재밌었어?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다음, 그다음에 잔인하게 버리려고 그런 거야?” 그녀는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으나 그는 물처럼 마음을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내가 그런다고 네가 사랑에 빠질 사람이던가, 어디.” “레이지 밀로, 넌 정말…….” “넌 내가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잘 살아갈 사람이잖아.” 그의 눈동자에는 지난 시간 동안 보이지 않았던 냉혹함과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원망과 분노가 동시에 고여 있었다. “신시, 넌 참 냉정한 사람이지. 너같이 냉정한 사람을 사랑한 것을 후회해.”

완결 여부미완결
에피소드1 권
연령 등급성인

세부 정보

팬덤 지표

🌟 로판 소설 중 상위 28.94%

👥

평균 이용자 수 997

📝

전체 플랫폼 평점

9.3

📊 플랫폼 별 순위

5.91%
N00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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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mnail

실로한 나비의 행선지에서

“금고 찾아볼게요. 그럼 살려 줄 거죠?” 모두가 기피하는 오염 지역에서 살아남아 보육원의 골칫거리로 자라온 소녀, 차온. 정해진 운명을 바꾸고자 애쓰던 때 수상한 남자를 만난다. 이질적인 회색 눈동자가 특별한, 아름다운 남자를. “첩자가 되겠다고?” “네. 여기서 죽을 수 없으니까요.” 남자를 만난 게 운명을 바꿀 기회임을 차온은 알았다. 그 기회의 끝이 눈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다른 기회를 잡았을까. * * * 첫 만남부터,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차온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차온은 절망했다. 아름다운 남자, 시열은 차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걱정하다가 죽고. 봐주다가 죽고. 믿다가 뒤통수 맞고. 여기가 좀 그래. 그러니 먼저 죽여야지.” “그쪽 옆에 있으면 나는, 나는 얼마 안 가서 모든 선을 다 넘어 버릴 것 같아요.” 시열은 거칠게 차온의 뺨을 잡아서 위로 들었다. 그 바람에 차온의 눈에 고인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보육원에 처박혀서 나오지 말지 그랬어.” 차온의 입술이 벌어졌다. 꽤 모양이 예뻤다. “그럼 이런 일 안 겪었잖아.” 시열은 붙잡혀 도망가지 못하는 차온의 입술에 키스했다. 울음기 낀 목소리가 그대로 삼켜졌다.

thumnail

미완성의 영역

이제는 빚밖에 남지 않은 전직 육상 선수, 김도나 여기보다 더한 밑바닥은 없다 생각하며, 심부름센터 과장으로 지낸 지도 어언 3년. 돈만 벌기에도 급급한 인생에서 어느 날 취향을 저격하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 까만 눈동자에 오뚝한 콧날, 창백한 피부,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훌륭한 남자. “주영원.” 하지만 자신을 주영원이라 소개한 남자는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하다. 마치 하나하나 다 알려 줘야 하는 사람처럼.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남자와 오래 볼 사이는 아니라 생각했다. 어쩌다 그와 미지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기 전까지는. * “주영원 씨. 잘 들어.” “…….” “아까처럼 우리를 두고 간다거나 도와주지 않는다거나 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다른 어떤 사람보다 너를 제일 먼저 없애 버릴 거야. 반드시.” “반드시 나를 없애고. 다음은 어떻게?” “당신 없음 우리가 죽을까 봐? 하지만 그냥 도와주기 싫으면 원하는 걸 말해. 먹을 거를 하나 더 달라든가. 혼자 누워서 자겠으니 우리 보고 보초를 서라든가. 왕 대접은 확실히 해 줄 테니까 당신은…….” “포옹.” 황당해서 말이 나오질 않지만 포옹 정도로 퉁칠 수 있다면 백 번이고 더 해 줄 수 있었다. “네가 원한 거야. 포옹.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야.” “아……. 흐으…….” “무슨, 뭐 이렇게 느껴.”

thumnail

파도를 거스르는 아이

그 섬에 가게 된 건,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팔찌가 고장이 나자 그 팔찌를 만들었다고 들은 섬으로 떠나게 된 정인. 겸사겸사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추억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그곳은 무인도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내, 내가 할게. 괜찮아.” “씻을 때도 그 팔찌를 차는가 봐.” 이상하게도 팔찌를 벗기는 것에 집착하는 한 남자. “매일 그리 울면 얼마 안 가 섬이 잠기겠다.” 그리고 그는 수상할 정도로 빠르게 정인의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별을 죽음처럼 받아들이는 그녀는 사랑을 멀리하려고 하지만 그는 이미 그녀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주위에서 맴도는데. “외로웠겠구나.” 우습게도 그녀가 이 섬에 와서 가장 생각이 없고, 가장 들뜨고, 가장 우울하지 않을 때는 오로지 그의 곁에 있을 때밖에 없었다. “그보다 더 단 것을 아는데. 줄까?” 죽음과 닮은 남자와 이별을 보내지 못하는 여자는 그 섬에서 하루를 보내고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파도를 거스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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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이 멎은 날에

하늘의 땅에서도 가장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염의 시선은 늘 바닥을 보았다. 오라비와 강가에 작은 초가집을 짓고 사는 것만이 유일한 염원. 그러나 하늘의 인심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로다. “상려산의 염.” “누명입니다!” “누명이라는 증좌가 있나?”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듯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쓰고 잡혀간 염의 오라비, 고순. 그를 구하고자 염은 당치도 않은 신분으로 천제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나 오라비의 누명을 벗겨 달라는 말에도 천제는 싸늘하기 그지없고, “염아.” “…예.” “염이라 불러도 되겠니.” 또 하나의 천제는 그저 이상할 만큼 다정한 사람이었으니. 그럴 이유도, 명분도 없는 사내가 상처 입은 염을 데려가 알뜰하게 보살폈다. “이 땅에 나오자마자 부모를 잃은 가엾은 것들이야.” 염을 주워 온 사내는 수상할 정도로 눈물이 많고, 다정하고, 부드러우며, “염아. 혹 일이 많니?” “예?” “손이 남는다면 내가 부탁을 해도 될까?” 수시로 나타나 한낱 아랫것의 하루를 망치기 일쑤였다. 오라비의 누명을 위하여 그의 옆에 남았으나 과연 그것이 다일까. “내게 하고픈 말이라도 있어?” 무엇을 안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는 눈을 볼 때면 염은 위협을 느꼈다. 세상 가장 다정하다는 이가, 전혀 다정하지 않게 느껴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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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를 사는 나무여 1~2권

칠흑 같은 시대. 요수를 봉인하는 퇴치사가 되기 위해 사내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을 살려준다면 부와 명예를 안겨다 준다는 수하라의 지주를 만나고, 그에게서 강한 요수의 기운을 느낀다. “저는 송덕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경이라고 합니다.” 이 자는 과연 사람일까. 요수일까. “나를 꺼내줘.” “…….” “이 나락 속에서.” 결국 요수이든 사람이든.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네 그 무모함이 좋아.” “뭐?” “네 요사스러운 기운도 좋고. 그 머리 아픈 노랫말도 좋아.” 요사스럽다니. 난생처음 들어 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입술을 깨물었는데. 요수는 술이 넘실거리게 따른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자경아.” “그리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너 계집이지.” 요수는 천천히 흐느적거리는 뱀처럼 미끄러져 내 앞으로 다가와, 그 사특한 손을 내 턱에 가져다 댔다. 위험한 자였다. 한데 나는 왜……. 이 자를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일까. “나와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우리의 기운이 만나 나를 잠재울 수 있어.” 나락으로 끌어내릴 듯, 음험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다 잠재우면. 그때 나를 봉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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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에 사는 뻐꾸기

“자꾸 눈길이 가고,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좋다.” 그것은 우림의 생애 첫 고백이었다. 상대를 착각한, 시작부터 잘못된 고백. “남은 1년 동안 수발 좀 들어.” “뭐?” “입막음 비용으로 이 정도면 싸다고 생각하는데.” 지렁이 옆구리 차는 소리 하네. 우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희태에게 애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까 너 꼭 나 도와줘야 된다.” 밥맛 떨어지게 입꼬리를 올린 희태의 눈은 명명백백 비웃고 있는 것이었다. *** 술기운이 도니 마음의 빗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좋은 감정뿐만이 아니라 원망의 고목에서 싹을 틔운 감정들도 탈옥하는 중이었다. 우림은 지독하고 질긴 인연으로 건물주가 되어 나타난 희태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내가 다시는 보지 말자고 안 했나.” “할 얘기는 없고. 동창으로서 네가 보고 싶어서.” “나쁜 새끼.” 소주 한 잔을 따라서 죽 마셔버리자 목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여자로서는 너만 한 사람이 없다 싶기도 했고.” 쓴맛을 없애기 위해 국물을 한술 뜨다가 그대로 고장이 나 버렸다. “또 나 갖고 놀지 마라. 이제 안 속는다.” “김종선이랑은 연락해?” “내가 왜.” 말문 막히게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넥타이를 느슨히 풀며 말했다. “네 인간관계에서 제거된 게 나만이 아니잖아. 기왕 망하려면 다 같이 망하는 게 낫지.” 봄이 오니 마음도 분갈이하고 씨를 뿌리나 보다. 오래전 짝사랑했던 김종선을 삽으로 퍼낸 자리엔 한겨울에도 푸르를 독종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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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거스르는 아이

그 섬에 가게 된 건,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팔찌가 고장이 나자 그 팔찌를 만들었다고 들은 섬으로 떠나게 된 정인. 겸사겸사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추억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그곳은 무인도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내, 내가 할게. 괜찮아.” “씻을 때도 그 팔찌를 차는가 봐.” 이상하게도 팔찌를 벗기는 것에 집착하는 한 남자. “매일 그리 울면 얼마 안 가 섬이 잠기겠다.” 그리고 그는 수상할 정도로 빠르게 정인의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별을 죽음처럼 받아들이는 그녀는 사랑을 멀리하려고 하지만 그는 이미 그녀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주위에서 맴도는데. “외로웠겠구나.” 우습게도 그녀가 이 섬에 와서 가장 생각이 없고, 가장 들뜨고, 가장 우울하지 않을 때는 오로지 그의 곁에 있을 때밖에 없었다. “그보다 더 단 것을 아는데. 줄까?” 죽음과 닮은 남자와 이별을 보내지 못하는 여자는 그 섬에서 하루를 보내고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파도를 거스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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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길에 사는 사람들 (People on a foggy road)

레이지 밀로, 그녀의 옛사랑이 돌아왔다. 신시가 홀로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우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곳 포트 메리로. “신시, 넌 나를 한 번이라도 그리워한 적이 있어?” 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삶이 고달팠던 그녀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를 밀어내려 하지만 그들의 끈질긴 인연은 어쩐지 더욱 꼬여만 가는데……. 신시는 모두를 위해 끝까지 잔인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내 몸을 원하는 거잖아.” “너한테는 그게 쉬워?” “사내들이 원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아무리 신사인 척하고, 귀족인 척해 봤자야.” 신시는 충격을 받은 듯한 레이지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네 첫사랑이란 여자가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 * * * “왜 나를 속였어?” 그의 가까이에 가자 술 냄새와 그의 향취가 섞인 향기가 났다. 그것이 신시의 가슴을 설레게도, 아프게도 만들었다. “재밌었어?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다음, 그다음에 잔인하게 버리려고 그런 거야?” 그녀는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으나 그는 물처럼 마음을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내가 그런다고 네가 사랑에 빠질 사람이던가, 어디.” “레이지 밀로, 넌 정말…….” “넌 내가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잘 살아갈 사람이잖아.” 그의 눈동자에는 지난 시간 동안 보이지 않았던 냉혹함과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원망과 분노가 동시에 고여 있었다. “신시, 넌 참 냉정한 사람이지. 너같이 냉정한 사람을 사랑한 것을 후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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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길에 사는 사람들

레이지 밀로, 그녀의 옛사랑이 돌아왔다. 신시가 홀로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우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곳 포트 메리로. “신시, 넌 나를 한 번이라도 그리워한 적이 있어?” 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삶이 고달팠던 그녀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를 밀어내려 하지만 그들의 끈질긴 인연은 어쩐지 더욱 꼬여만 가는데……. 신시는 모두를 위해 끝까지 잔인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내 몸을 원하는 거잖아.” “너한테는 그게 쉬워?” “사내들이 원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아무리 신사인 척하고, 귀족인 척해 봤자야.” 신시는 충격을 받은 듯한 레이지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네 첫사랑이란 여자가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 * * * “왜 나를 속였어?” 그의 가까이에 가자 술 냄새와 그의 향취가 섞인 향기가 났다. 그것이 신시의 가슴을 설레게도, 아프게도 만들었다. “재밌었어?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다음, 그다음에 잔인하게 버리려고 그런 거야?” 그녀는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으나 그는 물처럼 마음을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내가 그런다고 네가 사랑에 빠질 사람이던가, 어디.” “레이지 밀로, 넌 정말…….” “넌 내가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잘 살아갈 사람이잖아.” 그의 눈동자에는 지난 시간 동안 보이지 않았던 냉혹함과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원망과 분노가 동시에 고여 있었다. “신시, 넌 참 냉정한 사람이지. 너같이 냉정한 사람을 사랑한 것을 후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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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벽을 움킨 해일 외전

벽의 바깥에서 자라난 이야라. 어느 날 자신을 데려간 귀부인에 의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름도 거창한 서부의 후계자가 된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과연 이게 내 자리가 맞는 걸까. 그런 의문으로 살아가던 이야라 앞에 나타난 왕자님. “안녕.” 그러나 그는 그녀가 읽던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과 거리가 멀었다. 사납고, 재수 없었다. “이런, 질투하지 마.” “내 이름 부르지 마. 역겨우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친절하고, 재밌는 왕자라고 한다. 내 앞에서만 가면을 벗는 일린저가 너무도 싫었다. “네 사이즈도 몰라? 그 멍청이는.” “뭐라는 거야.” “아니면. 다른 남자라도 있어?” 언젠가부터 선을 넘을 듯이 아슬아슬하게 다가오는 그. “이야라.” 학원 생활이 위험한 줄타기를 타듯 아슬해졌다. “잘생겼다고 너무 그렇게 보진 마.” 살짝 미쳐버린 왕자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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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여러 해를 사는 나무여 외전

칠흑 같은 시대. 요수를 봉인하는 퇴치사가 되기 위해 사내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을 살려준다면 부와 명예를 안겨다 준다는 수하라의 지주를 만나고, 그에게서 강한 요수의 기운을 느낀다. “저는 송덕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경이라고 합니다.” 이 자는 과연 사람일까. 요수일까. “나를 꺼내줘.” “…….” “이 나락 속에서.” 결국 요수이든 사람이든.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네 그 무모함이 좋아.” “뭐?” “네 요사스러운 기운도 좋고. 그 머리 아픈 노랫말도 좋아.” 요사스럽다니. 난생처음 들어 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입술을 깨물었는데. 요수는 술이 넘실거리게 따른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자경아.” “그리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너 계집이지.” 요수는 천천히 흐느적거리는 뱀처럼 미끄러져 내 앞으로 다가와, 그 사특한 손을 내 턱에 가져다 댔다. 위험한 자였다. 한데 나는 왜……. 이 자를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일까. “나와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우리의 기운이 만나 나를 잠재울 수 있어.” 나락으로 끌어내릴 듯, 음험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다 잠재우면. 그때 나를 봉인해.”

thumnail

(이용권) 내 벽을 움킨 해일 외전

벽의 바깥에서 자라난 이야라. 어느 날 자신을 데려간 귀부인에 의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름도 거창한 서부의 후계자가 된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과연 이게 내 자리가 맞는 걸까. 그런 의문으로 살아가던 이야라 앞에 나타난 왕자님. “안녕.” 그러나 그는 그녀가 읽던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과 거리가 멀었다. 사납고, 재수 없었다. “이런, 질투하지 마.” “내 이름 부르지 마. 역겨우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친절하고, 재밌는 왕자라고 한다. 내 앞에서만 가면을 벗는 일린저가 너무도 싫었다. “네 사이즈도 몰라? 그 멍청이는.” “뭐라는 거야.” “아니면. 다른 남자라도 있어?” 언젠가부터 선을 넘을 듯이 아슬아슬하게 다가오는 그. “이야라.” 학원 생활이 위험한 줄타기를 타듯 아슬해졌다. “잘생겼다고 너무 그렇게 보진 마.” 살짝 미쳐버린 왕자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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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나만큼 느리다면 외전

“넌 무슨 애가 저녁도 안 먹고 공부하냐.” 양아치. 답도 없는 시끄러운 애. 내가 그 애한테 느낀 첫인상은 이것이 전부였다. 게임 <버블 월드>에서 만난 조조가 그 애의 형이란 걸 알기 전까지. “너 혹시 영화 좋아해?”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베푼 친절이 열 배의 부담이 되어 돌아왔다. “나랑 있는 게 좋잖아.” “어?” 얘가 낮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온 걸까. 나는 어이 없는데 저 혼자 희희낙락이었다. “배고파.” “사, 사 달라고?” “사 줄게.” 정이 고팠던 그 애한테 미끼를 던져 준 내 잘못일까. 여름날 더위에서 도망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다. “저 섬희랑 사귀어요.” 그것도 아주 제대로. 일러스트: HOZI

thumnail

여름이 나만큼 느리다면

“넌 무슨 애가 저녁도 안 먹고 공부하냐.” 양아치. 답도 없는 시끄러운 애. 내가 그 애한테 느낀 첫인상은 이것이 전부였다. 게임 버블 월드에서 만난 조조가 그 애의 형이란 걸 알기 전까지. “너 혹시 영화 좋아해?”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베푼 친절이 열 배의 부담이 되어 돌아왔다. “나랑 있는 게 좋잖아.” “어?” 얘가 낮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온 걸까. 나는 어이 없는데 저 혼자 희희낙락이었다. “배고파.” “사, 사 달라고?” “사 줄게.” 정이 고팠던 그 애한테 미끼를 던져 준 내 잘못일까. 여름날 더위에서 도망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다. “저 섬희랑 사귀어요.” 그것도 아주 제대로. 일러스트: HO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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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의 눈이 먼 날에

옥룡산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 올라온 산신령 산영은 실수로 주인이 있는 과실을 따 먹고 만다. 호랑이 세 마리를 부려도 거뜬한 신력이 차올라 놀라는데.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사내가 나무를 지키는 이인가 보았다. "내가 갚습니다. 백 년이 걸려도 천 년이 걸려도 갚을 터이니 몹쓸 생각은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나무 지기 사내와 하늘 나들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름을 잊어먹었다던 사내에게 이름도 지어주었다. 내리는 빗줄기처럼 잔잔하던 사내의 얼굴에 금이 갔다. “기쁘게 사례해 드리겠다는 뜻으로… 희, 사. 희사 어른? 희사 님?” 첫만남부터 표정이랄 게 없는 사내는 산영을 미워하는 건지, 싫지는 않은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의 감정을 헤아리기도 전에 입술이 초근초근한 무언가와 부딪혔다. “이게, 이것이 무슨…….” “싫어?” 싫을 리가. 희사 님과 맞붙어 있는 가슴께로 심장이 펄떡 뛰었다. 산영의 마음은 변덕스러운 소낙비처럼 설레다가도 이따금 제 주제를 알라는 듯 따끔거렸다. 땅으로 떨어지려는 빗줄기 같은 여인과 하늘 위 하늘에 사는 한 사내의 이야기, 술래의 눈이 먼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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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

*본 작품은 카카오페이지에서 동일한 작품명으로 15세이용가와 19세이용가로 동시 서비스됩니다. 연령가에 따른 일부 장면 및 스토리 전개가 상이할 수 있으니, 연령가를 선택 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살다가 내가 저 여자야, 저 여자라고, 하면?" 단정한 군복보다 비릿한 피 냄새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히아신 아스. “돈만 제때 준다면, 제 시체는 당신 거예요.” 가슴에 묻고 산 과거에 대한 진실을 찾고자 하는, 나디사 마로닌. * * * 나디사는 바라던 라드군의 합격증을 받은 뒤, 입단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전당포를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마혼과 계약해 검은 문신으로 온몸이 뒤덮인, 히아신 아스를. “네 눈과 피를 담보로 하는 계약에 조건을 더하고 싶은데. 그러면 내가 너무 악랄해 보일까?” 바로 자신이 원하면 어디든, 누구든 무자비하게 죽여 달라는 것. 그녀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홀린 듯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이후 운명의 장난처럼 두 사람은 같은 부대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는 그녀의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하늘인 신의 손길 한 번 받겠다고 목매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그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관계라 가볍게 여겼지만, 거부할 수 없는 손길에 취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반대쪽에 서 있는 여자가 제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는 걸. 그러니 사랑과 증오, 무엇도 가질 수 없다면, 그 없다는 사실이나마 제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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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너의 겨울은

[우리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아.] 결국 7년간 연애를 해온 너에게 통보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사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와 나는 사랑을 속삭이지도 않았고, 나에게 너는 한없이 불편한 존재였다. 사실, 그게 아니다. 더는 초라해진 나를 속일 수 없었던 것일 뿐. 김유을, 나는 너에게 가장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 거짓의 무게가 자주 나를 짓눌러왔음을. "김유을, 너한테 거짓말했어, 오랫동안." 그래서였다.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뒤 세상에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어쩌면 이게 우리의 끝일지라도. 그런데 네가 환하게 웃었다. “너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 같아? 너, 되게 허술해." 마치 내 모든 거짓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너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나의 비겁한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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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 청개구리

까탈스러운 아이. 부모는 관심이 없고 조부모는 자기에게서 다른 사람을 본다. 열여덟 살, 해루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넌 내려가.” “아, 나도 혼자 있고 싶은데. 우리 그냥 서로를 없는 셈 치고 여기에 있는 게 어떨까?” 이상한 여자애를 만났다. 외로운 왕처럼 군림하던 해루의 세상에 처음으로 반기를 들고 나타난 바보. 그게 해루는 몹시도 거슬릴 뿐이었다. “축구, 네가 제일 잘하던데.” 그런데 과연 거슬리기만 하는 걸까. “정해루. 기다려 봐.” “뭐….” “이쪽이야.” 원래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한번 발을 들이면 만족스러운 결실을 얻기 전까지 빠져나가기 힘든 법이다. 그게 바로 자꾸 하얀을 생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만약 하얀 같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렇게 해루의 세상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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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활한 숲속의 물고기

*본 작품은 동일한 작품명으로 19세이용가와 15세이용가로 동시 서비스됩니다. 연령가에 따른 일부 장면 및 스토리 전개가 상이할 수 있으니, 연령가를 선택 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 루디그 가문의 셋째인 아라네스와 레이그로 가문의 사로반의 정혼을 제안한다. ] 왕의 명으로 맺어진 혼약. 내게서 사랑하는 것들을 뺏어 가는, 한 줌의 자유를 앗아 가려는 높은 담에 불과했다. 담장 밖의 그 사내애는 그저 웃었다. 내가 그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하지 마.' 일 것이다. "재수 없어." "나에 대한 예의를 지켜, 넷. 나는 네 정혼자야." 내가 누리는 자유는 언젠가 너에게 갈 테지만, 나의 유일한 사랑은 검에게 바쳤다. 여인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들을 소망하며 상상해 봤다. 나를 가로막는 담을 다 부숴 버리고, 그 뺀질한 얼굴에 당혹이 가득찰 날을. 하지만 내가 여인이 되고, 그가 사내가 되자, 사로반 레이그로는 어딘가 조금 이상해졌다. "넷, 거기 서. 얘기하고 가." "싫어, 내가 왜? 난 네가 싫어." "싫은 사내와 면사포 쓰고 이마를 맞대게 됐네. 가여워서 어쩌나." 여전히 머리가 터질 정도로 나의 화를 부추겼지만, "검이 그렇게 좋으면, 나랑 해." "......무얼 해?" "검술 대련, 그 기분 좋은 거를." 나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걸까. 아니면 이 또한 함정일까. 너를 믿기엔 나는 너무 착하지 않고, 나를 놔주기엔 너는 너무 못된 새끼였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네가 무서웠다. 눈에 서리는 묘한 열기도.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타박하는 것도. 서늘한 솔직함을 내게만 말해 주는 것까지, 모두. 내가 너를 더이상 미워하지 못할까 봐. 교활한 그의 담을 부술 힘을 잃을까 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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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를 사는 나무여

칠흑 같은 시대. 요수를 봉인하는 퇴치사가 되기 위해 사내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을 살려준다면 부와 명예를 안겨다 준다는 수하라의 지주를 만나고, 그에게서 강한 요수의 기운을 느낀다. “저는 송덕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경이라고 합니다.” 이 자는 과연 사람일까. 요수일까. “나를 꺼내줘.” “…….” “이 나락 속에서.” 결국 요수이든 사람이든.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네 그 무모함이 좋아.” “뭐?” “네 요사스러운 기운도 좋고. 그 머리 아픈 노랫말도 좋아.” 요사스럽다니. 난생처음 들어 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입술을 깨물었는데. 요수는 술이 넘실거리게 따른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자경아.” “그리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너 계집이지.” 요수는 천천히 흐느적거리는 뱀처럼 미끄러져 내 앞으로 다가와, 그 사특한 손을 내 턱에 가져다 댔다. 위험한 자였다. 한데 나는 왜……. 이 자를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일까. “나와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우리의 기운이 만나 나를 잠재울 수 있어.” 나락으로 끌어내릴 듯, 음험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다 잠재우면. 그때 나를 봉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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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벽을 움킨 해일

벽의 바깥에서 자라난 이야라. 어느 날 자신을 데려간 귀부인에 의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름도 거창한 서부의 후계자가 된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과연 이게 내 자리가 맞는 걸까. 그런 의문으로 살아가던 이야라 앞에 나타난 왕자님. “안녕.” 그러나 그는 그녀가 읽던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과 거리가 멀었다. 사납고, 재수 없었다. “이런, 질투하지 마.” “내 이름 부르지 마. 역겨우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친절하고, 재밌는 왕자라고 한다. 내 앞에서만 가면을 벗는 일린저가 너무도 싫었다. “네 사이즈도 몰라? 그 멍청이는.” “뭐라는 거야.” “아니면. 다른 남자라도 있어?” 언젠가부터 선을 넘을 듯이 아슬아슬하게 다가오는 그. “이야라.” 학원 생활이 위험한 줄타기를 타듯 아슬해졌다. “잘생겼다고 너무 그렇게 보진 마.” 살짝 미쳐버린 왕자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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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벽을 움킨 해일

벽의 바깥에서 자라난 이야라. 어느 날 자신을 데려간 귀부인에 의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름도 거창한 서부의 후계자가 된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과연 이게 내 자리가 맞는 걸까. 그런 의문으로 살아가던 이야라 앞에 나타난 왕자님. “안녕.” 그러나 그는 그녀가 읽던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과 거리가 멀었다. 사납고, 재수 없었다. “이런, 질투하지 마.” “내 이름 부르지 마. 역겨우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친절하고, 재밌는 왕자라고 한다. 내 앞에서만 가면을 벗는 일린저가 너무도 싫었다. “네 사이즈도 몰라? 그 멍청이는.” “뭐라는 거야.” “아니면. 다른 남자라도 있어?” 언젠가부터 선을 넘을 듯이 아슬아슬하게 다가오는 그. “이야라.” 학원 생활이 위험한 줄타기를 타듯 아슬해졌다. “잘생겼다고 너무 그렇게 보진 마.” 살짝 미쳐버린 왕자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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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너의 겨울은 외전

[우리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아.] 결국 7년간 연애를 해온 너에게 통보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사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와 나는 사랑을 속삭이지도 않았고, 나에게 너는 한없이 불편한 존재였다. 사실, 그게 아니다. 더는 초라해진 나를 속일 수 없었던 것일 뿐. 김유을, 나는 너에게 가장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 거짓의 무게가 자주 나를 짓눌러왔음을. "김유을, 너한테 거짓말했어, 오랫동안." 그래서였다.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뒤 세상에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어쩌면 이게 우리의 끝일지라도. 그런데 네가 환하게 웃었다. “너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 같아? 너, 되게 허술해." 마치 내 모든 거짓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너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나의 비겁한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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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나만큼 느리다면

“넌 무슨 애가 저녁도 안 먹고 공부하냐.” 양아치. 답도 없는 시끄러운 애. 내가 그 애한테 느낀 첫인상은 이것이 전부였다. 게임 버블 월드에서 만난 조조가 그 애의 형이란 걸 알기 전까지. “너 혹시 영화 좋아해?”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베푼 친절이 열 배의 부담이 되어 돌아왔다. “나랑 있는 게 좋잖아.” “어?” 얘가 낮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온 걸까. 나는 어이 없는데 저 혼자 희희낙락이었다. “배고파.” “사, 사 달라고?” “사 줄게.” 정이 고팠던 그 애한테 미끼를 던져 준 내 잘못일까. 여름날 더위에서 도망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다. “저 섬희랑 사귀어요.” 그것도 아주 제대로. 일러스트: HO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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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에 여우는

반짝반짝 빛나는 남의 것만 탐내는 여우, 차준재. 오늘이 바로 네 제삿날이다. “차준재. 너 설마 여기 묵니?” “그럼 안 돼?” 새사람으로 태어나고자 배낭을 메고 도착한 작고 아름다운 섬. 털 빠진 닭 같은 나를 위로하는 휴양 생활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딸 걱정을 앞세운 부모님이 진군해 오시기 전까진. 아니, 부모님의 친구와 그분들의 아들, 차준재란 혹만 없었더라도 괜찮았을 테다. 그의 불편한 침범은 나의 삶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학창 시절, 대학 시절, 하물며 꿈에서까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그에게 빼앗기고, 또 빼앗긴 인생! 이번에는 나한테 무얼 뺏어 가려고 하는 걸까. “나 너 싫어해. 싫어해, 정말 싫어해.” 벼르고 벼르던 절교 선언을 하는 순간.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 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을 뿐이야.” 고백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말을 마친 그의 표정은 그저 평온하고 평화로워 나의 절망을 부를 뿐. “사실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거든.” 그건 오래 묵어 광기로 변한 감정이었다. 일러스트 ⓒ 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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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 자의 기도문

신이 가장 총애하는 종, 사하로. 악을 처단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왔다가 그만 덫에 걸리고 만다. 한순간 악을 동정했다는 이유로 날개를 잃고, 땅에 묶여버렸다. 그렇게 악이 다시 나타나길 수백 년을 기다렸는데. [사랑하는 후원자님께. 저한테 이 만년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사하로는 악이 깃든 인간, 야닉의 무사한 삶을 위해 후원자를 자처한다. 악이 눈을 뜨지 않기를, 그가 이 땅에서 사람으로서 죽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가시밭길로 나아가는데. “이런 식으로 팔면 돈을 더 얹어줄 줄 알아? 그러니까 더욱 흥미가 식었어. 여기서 나가, 야닉 언브리.” “무서워요?” “무서워……?” “한 번 사면 맛 들일까 봐. 하기야 하룻밤에 5,000위트니……. 한 달이면 집 한 채 사겠는데.” 되지도 않는 남창 노릇을 하며 살살 약을 올리는 남자. 더욱 이상한 건 그런 그에게 끌리는 신의 종이 아닐까. 신의 눈을 피한 바다 위에서 사특한 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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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난초가 되기까지

착한 사람은 과연 언제까지 착할 수 있을까. 엄마의 희망, 이모의 꿈. 삶의 다리가 부러져 다른 사람의 삶을 가져다 목발로 쓰는 여자들. 냉정히 말하고 싶지 않으나 나의 삶을 돌이켜 보자면 누군가의 목발이었을 뿐이다. 사랑하고, 착하고, 가족이라서. 아름다운 말들이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은 나날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유일한 동네 친구 강의주도 나의 곁을 떠나갔다. 나는 그 아이의 장례식 날, “조문하러?” 그 애의 형을 만났다. 갈려 나온 듯한, 낮고 음험한 목소리가 불 꺼진 그곳에서 들려왔다. “네가 양지언이지.” 남자가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밥 먹고 갈래.” 내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 장례식장에 발을 들인 건 그래서였다. 장례식날 이후 그와 함께 이상한 추모를 계속하던 나는, “양지언.” “네.” “살살해. 나도 충분히 쪽팔리니까.” 나의 삶이 누군가의 목발이 아니게 된 순간, 도망치듯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나의 삶이 스스로 일어서게 되었음에도, 과거의 인연이 커다란 두 눈을 뜨고 나를 쫓아다니는 기분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는 날에도, 불 꺼진 골목길을 걸을 때도, 새로 사귄 친구와 버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쓸데없이 착하면 네가 피해자인데도 가해자가 된다. 재밌지. 네가 나한테 그런 것처럼, 좋기만 한 일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니까.” 그리고 우연처럼 다시 만난 강의주의 형, 강의태. 나는 오롯이 홀로 선 나의 인생이 과연 목발이던 시절보다 나은지 장담할 수 없다. 일러스트: 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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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성

집안이 망하고 오빠와 함께 쫓겨난 레이. 무작정 옛적 연이 있는 곳을 찾아,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게 된다. 붉은 장미로 뒤덮인 웅장한 성. 그곳에서 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야수였다. * 밤에는 문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당부를 어긴 날이었다. 클로단은 레이의 뺨을 붙들고 엄지로 입술을 쓸었다. “내가 나오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그, 그것도 미안해. 상황이 너무…… 그랬어.” “네가 그렇게 우물거릴 때마다.” 레이는 혀를 깨물었다. 긴장하면 말더듬이가 되는 건 집안 내력이다. “내 걸 물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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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를 사는 나무여 외전

칠흑 같은 시대. 요수를 봉인하는 퇴치사가 되기 위해 사내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을 살려준다면 부와 명예를 안겨다 준다는 수하라의 지주를 만나고, 그에게서 강한 요수의 기운을 느낀다. “저는 송덕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경이라고 합니다.” 이 자는 과연 사람일까. 요수일까. “나를 꺼내줘.” “…….” “이 나락 속에서.” 결국 요수이든 사람이든.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네 그 무모함이 좋아.” “뭐?” “네 요사스러운 기운도 좋고. 그 머리 아픈 노랫말도 좋아.” 요사스럽다니. 난생처음 들어 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입술을 깨물었는데. 요수는 술이 넘실거리게 따른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자경아.” “그리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너 계집이지.” 요수는 천천히 흐느적거리는 뱀처럼 미끄러져 내 앞으로 다가와, 그 사특한 손을 내 턱에 가져다 댔다. 위험한 자였다. 한데 나는 왜……. 이 자를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일까. “나와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우리의 기운이 만나 나를 잠재울 수 있어.” 나락으로 끌어내릴 듯, 음험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다 잠재우면. 그때 나를 봉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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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을 피우더라도

나는 바람의 요정 실라.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푸르른 들판을 달리는 자. 오늘도 친우들과 숲에서 사냥을 하기로 했었는데……. 머리 통증 때문에 눈을 떠 보니, 낯선 곳이다. 저 땅끝 멀리서 보이는 빛을 제외하면 위고 아래고 할 것 없이 어두컴컴하다. 태양이 뜨지 않는 황량한 땅이라니, 악몽이나 다름없다. “제가 왜 죽음의 땅에 있죠?” “악티우스 님과 혼인하셨으니까요.” 태연히 돌아오는 대답에 머릿속은 더 혼란스럽다. 내가 죽음의 신 악티우스와 혼인을 했다고. 그의 얼굴도 본 적이 없건만. 거기다 내가 아프다고 한다. 몸은 무겁고, 머리는 안개에 갇힌 듯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 같은 게 중요한가요? 지나간 기억은 돌아올 겁니다. 그보단 앞으로의 기억이 더 중요하지요.”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수상한 반응에 그저 이 죽음의 땅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데. 악티우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열이 오른 내 이마를 상냥하게 쓰다듬어 준다. 그의 위명에 걸맞지 않게도. *** “저는 한낱 바람의 요정인 걸요.” 그 말에 악티우스는 반발하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대는 한낱 요정이 아니라…….” 진지한 표정으로, 웃음기 없이 말을 이어 나가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목소리를 작게 바꾸었다. “그대는, 나의 여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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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에 사는 뻐꾸기

“자꾸 눈길이 가고,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좋다.” 그것은 우림의 생애 첫 고백이었다. 상대를 착각한, 시작부터 잘못된 고백. “남은 1년 동안 수발 좀 들어.” “뭐?” “입막음 비용으로 이 정도면 싸다고 생각하는데.” 지렁이 옆구리 차는 소리 하네. 우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희태에게 애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까 너 꼭 나 도와줘야 된다.” 밥맛 떨어지게 입꼬리를 올린 희태의 눈은 명명백백 비웃고 있는 것이었다. *** 술기운이 도니 마음의 빗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좋은 감정뿐만이 아니라 원망의 고목에서 싹을 틔운 감정들도 탈옥하는 중이었다. 우림은 지독하고 질긴 인연으로 건물주가 되어 나타난 희태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내가 다시는 보지 말자고 안 했나.” “할 얘기는 없고. 동창으로서 네가 보고 싶어서.” “나쁜 새끼.” 소주 한 잔을 따라서 죽 마셔버리자 목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여자로서는 너만 한 사람이 없다 싶기도 했고.” 쓴맛을 없애기 위해 국물을 한술 뜨다가 그대로 고장이 나 버렸다. “또 나 갖고 놀지 마라. 이제 안 속는다.” “김종선이랑은 연락해?” “내가 왜.” 말문 막히게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넥타이를 느슨히 풀며 말했다. “네 인간관계에서 제거된 게 나만이 아니잖아. 기왕 좆 되려면 다 같이 좆 되는 게 낫지.” 봄이 오니 마음도 분갈이하고 씨를 뿌리나 보다. 오래전 짝사랑했던 김종선을 삽으로 퍼낸 자리엔 한겨울에도 푸르를 독종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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