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쉬는 숨이 목에 덜컥 걸렸다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그렇게 노골적인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머리를 말리는 손길엔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것처럼 담백한 게 이상했다. “숨 제대로 쉬어. 그러다 기절하겠네.” “내가, 내가 괜찮다고 하면 그거… 할 거라고 했잖아. 그 말 진심이야?” 실제로 그가 목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압박에 숨이 찼다. 부족한 호흡 때문에 사희의 가슴은 크게 오르내렸다. “씹?” 시윤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겁먹은 얼굴 하지 마. 내가 정말 개새끼이기는 한데, 네가 싫다고 하면 안 할 거니까.” 그는 다 쓴 수건을 창틀에 아무렇게나 걸쳐 놓고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었다. “우선 차근차근 키스부터 해 볼래? 좋을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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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춰 봐라. 내가 흔들리나.” 외모에 눈길이 가는 것과 이성적인 매력에 끌리는 감정은 다르지. 은재는 친구인 이도현을 비웃었다. “너 내 알몸 본 적 없잖아.” “내가 왜 네 알몸을 본 적이 없어? 열 번은 봤겠다.” 아기때 목욕도 한 사이끼리. 왜 이래? 친구로서는 최고일지 몰라도, 남자로 도현 같은 공붓벌레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보기 전까지는.
아픈 동생을 위해 억지 결혼을 해야 하는 아영과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결혼을 해야 하는 권. 두 사람의 결혼의 시작은 허니문이 아닌 비터문이었다. “두 시간 있어.” 그가 그녀의 말을 딱 끊었다. “네?” “좀 짧은가?” 그의 손이 와이셔츠의 두 번째 단추에 닿자, 아영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 손끝을 말아 쥐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날 여기 데리고 온 거예요?” “빙고.”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그렇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잘 지내게 될 거야.” 핏빛 버진로드를 따라, 아영은 차디찬 눈의 남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겁도 없이 막 덤비네.”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겠다고 해서 안심돼? 이 새끼가 어디까지 버티나 장난쳐 보는 것도 아닐 테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순간, 덜컹하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선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만큼이나 요동치고 있었다. “선 넘지 마.” 그렇게 말하고 그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은 완벽하게 다정해서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넘으면 어떻게 돼요?” “내가 너 삼켜 버릴 수도 있어.” 일러스트: 알페
태혁은 열일곱, 아직 채 피지도 않은 어린 계집애에게서 타는 것 같은 목마른 욕정을 느꼈다. 몇 번쯤. 스치듯 지나던 그녀에게서 풋풋한 여자의 체취를 맡았다. 그때마다 완전히 발기해버리는 것을 불편하게 내려다보며, 그는 결심했다. ‘너를 갖겠다.’ 강태혁은 오직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그 긴 시간을 인내했다. “너의 몸을 갖는 게 내가 처음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 너의 모든 것을 갖는 것은 내가 처음일 테니까.” 서희의 새카만 눈동자가 겁을 먹은 듯, 흔들렸다. 부드러운 여체가 온몸으로 느껴지자 태혁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삼킬 수 있을 만큼 거친 흥분을 느꼈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태혁은 비단같이 감겨드는 살갗을 느끼며 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축였다.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어루만졌다. 자꾸만 오므리려는 다리사이로 무릎을 밀어 간단히 틈을 만든 뒤, 따스한 습기가 느껴지는 곳까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한쪽을 누르면 손가락을 감싸듯이 양쪽으로 감겨온다. 거칠게 속옷을 끌어내리자 흐릿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마저도 그의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좁은 차 안은 삐걱거리는 소리로 요란했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눈썹이 바르르 떨리며 꼭 감겨 있었다. 가냘픈 손가락이 새하얗게 관절이 드러날 정도로 그의 옷깃을 틀어쥐고 있었다. ‘미치겠군.’ 완전히 딱딱하게 일어선 것이 그녀의 허벅지에 닿아있었다. 그것을 느꼈는지 그녀가 몸서리를 치며 입술을 악 물었다. “울 정도로 싫으면 물어뜯어서라도 멈추게 하는 거야.” 태혁은 불편하게 중얼거리며 눈물이 흐르는 그녀의 눈가를 닦아냈다. “그러면 안 할 거예요?” 그녀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몰랐는지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눈을 비벼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면서 지지 않겠다는 듯, 꽤나 도전적으로 물었다. 태혁은 그녀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 “아니, 하고 싶어지도록 만들어야지.” 당황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될지, 어떨지, 해보고 싶지 않아?”
[이 도서는 의 15금 개정본입니다] 복수를 위해 덫을 놓은 여자, 이유민. “내 앞에서 계속 얼쩡거리는 이유가 뭐야?” “얼쩡거리다니요.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아니라고 말할 참인가?” “그 말씀은 제가 이사님을 마음먹고 유혹하려 했다, 그건가요? 오늘 팀장님과 함께 온 것도 이사님 때문이고요? 지나치게 왕자 병이신 거 아니에요?” 복수를 위한 덫에 걸려든 남자, 민이환. “관심 있어.” “네?” “회사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내가 이유민 씨한테 관심이 있어.” 다정하고 부드럽던 그 남자. 그러나 2년 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난 당신 잊었어요.” “난 한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단 한순간도.” “날 때리고 싶나요? 그럼, 때려요.” “일을 저질러 놓고 감당이 안 되니까 도망이나 친 주제에 용감한 척하는 건가? 내가 뭘 원하느냐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의해 유민의 얇은 셔츠가 뜯겨져 나갔다. “이거 놔!” “아까 여관 주인이 그러더군. 10만 원이면 긴 밤, 5만 원이면 짧은 밤, 여자는 원하는 취향대로 얼마든지 고르라고 말이야. 넌 얼마지?”
“저기….” 목이 콱 막혀 재인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잠시만 있어 보라는 듯 신호를 보내고 거실에 나가 생수병을 가져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마시고 얘기해.”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에게서 차가운 유리병을 받아 들었다. “저기 어제 일은… 일단 죄송합니다. 제가 기억이 잘 안 나서요. 말이 안 되는 변명인 거 아는데,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몰라서요.”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특별히 술이 세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칵테일 한 잔에 필름이 끊겨 진상을 부릴 정도는 더더욱 아니었으니까. “아, 지금 사람을 덮쳐 놓고 발뺌을 하시겠다?” “덮… 덮쳐요? 제가 맥타가트 씨를요? 하….” 뭐가 억울한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억울했다, 막막하고 앞이 캄캄했다. “물론, 맥타가트 씨야 여자한테 인기도 많으실 거고,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겠지만 저는 전혀 아닙니다. 저는 여기 일하러 온 거지,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정말 눈곱만큼도 없어서요.” “그런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사람치고는 굉장하던데. 내 얼굴을 움켜쥐고 키스도 하고, 좆도 빨고.”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식은땀이 흐르고 목덜미부터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생수병을 따서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을 마시니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목 안이 좀 부어오른 것처럼 묵직하게 아파서 재인은 물을 마시며 헛기침을 했다. “목이 좀 아플걸.” “네?” “자꾸 목 안에 닿아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반만 빨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듣더라고. 그렇게 맛있었어?” 그가 자신의 하반신으로 눈짓을 보내자, 그제야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은 재인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거짓말!” 일러스트: 엑저
“겁도 없이 막 덤비네.”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겠다고 해서 안심돼? 이 새끼가 어디까지 버티나 장난쳐 보는 것도 아닐 테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순간, 덜컹하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선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만큼이나 요동치고 있었다. “선 넘지 마.” 그렇게 말하고 그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은 완벽하게 다정해서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넘으면 어떻게 돼요?” “내가 너 삼켜 버릴 수도 있어.” 일러스트: 알페
넓은 침대 위에 주헌이 헤드에 등을 기댄 채 알몸으로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선이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이질적인 곳으로 쏠렸다. 꿈속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낮에 바지 속에서 봤던 것. 브리프 속에 감춰져 있던 묵직한 형태만으로도 기가 질릴 정도였던 건, 발기하고 나자 아예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크기가 되어 있었다. 원주헌은 그걸 손아귀 가득 붙잡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가 뭘 하든 여기는 개인적인 공간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사과하고는 도망치듯 거실로 나가려던 그녀가 문뜩 걸음을 멈췄다. “저 인간이 지금 내 이름 부르면서….” 그럼 그게…. 그녀의 얼굴이 활활 타올랐다. *** “김선이 선생님, 다 봐놓고 왜 도망가요?” “못 봤어요.” 물론 봤다. “못 봤어요?” 그가 마치 섭섭하다는 듯 물었다. “내 자지 어떻게 컸는지 보고 싶지 않아요? 되게 예쁘게 컸는데.”
너, 서수현. 웃어 주지 않으면서 미치도록 갈망하게 만드는 네가 밉다. 마구 물어뜯고 짓이겨 다시는 다른 남자한테 갈 수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할 건지 알아?” 조명을 등지고 선 그의 표정은 소름이 끼치도록 조용했다. “널 울게 할 거야.” 너, 강신우. 기껏 외모 하나 잘난 거 믿고 골빈 여자애들이 졸졸 따라다니니까 세상이 다 네 중심인 것 같아? 웃기지마, 네가 청바지가 아니라 명품 코트를 입고 있어도 나한테 너는 그냥 변태, 개망나니야. “너 미쳤니?” 그녀는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웃기 시작했다. 정말로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아, 그래. 네 그 말투가 그리웠던 걸 보면 확실히 내가 제정신은 아니지.” 10년,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그녀는 도망치듯 그의 손을 빠져나갔다. “뭐 하는 거야?” 태오는 혀로 아랫입술을 핥으며 웃었다. 조금 전까지 손안에 쥐고 있던 걸 놓친 아쉬움과 함께 갑자기 아래에서 찌릿하게 느낌이 왔다. “정말 도망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저도 모르게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어깨가 움찔하고 위로 튀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 안 되지. 이런 식으로 가면 겁먹을 게 빤하다. “착하게, 얌전히.” 입으로는 주문처럼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뜨거운 피가 펄펄 끓을 것처럼 한군데로 몰렸다. 흉포한 충동을 억누르며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쫓아 걸어가는 그의 허벅지가 돌처럼 단단했다. 진짜 사냥감의 뒤를 쫓는 것처럼 피부가 흥분으로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제가 상무님께 장부를 드리면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뭔가요?” 그가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다른 누군가가 드물게 웃고 있는 그를 봤다면, 매력적인 모습에 가슴이라도 떨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만큼 두려운 순간이었다. “무릎 꿇고 애원이라도 했으면 귀엽기는 했을 텐데.”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그녀는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등 뒤에 차가운 벽이 닿았다 그는 궁지에 몰린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역겹나?” 팔딱거리는 가는 목을 물어뜯으면 속이 시원할까. “아니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 아니면 비명을 지르고 또 애원하고 애원하게 만들면 속이 시원할까. 겁먹은 척, 눈을 내리깐 앙큼한 저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부르게. [본 도서는 15세이용가에 맞게 수정&재편집된 도서입니다]
검은 숲의 신. 능글맞거나 까칠하거나. “우선 네 몸 전부를 맛보고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그것 딱 하나만 내가 받아 가마.” “맛이요?” “그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싫으면 말고. 한쪽 팔을 괴고 모로 길게 기댄 그의 표정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담 안의 아씨. 순진하거나 고집 세거나. “아악!” 건장한 허벅지 가운데 살기둥이 튕기듯 바지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도 모르게 또렷이 보아 놓고는, 기함하여 홍화는 뒤로 진저리를 치듯 물러났다. “맛, 맛을 보는 거라 하셨잖습니까? 그, 그것은 왜….” 그가 홍화에게 바짝 다가왔다. “입으로만 맛을 본다고는 않았는데.”
살인자인 아빠와 그 딸은 사람들에게 한 묶음이었다. 서능화는 그래도 되는 아이였다. 더러운 피를 가진 종자였으므로. 아빠의 매질을 피해 달아나던 능화는 나이트클럽 사장 도계환을 붙잡았다. “나한테 반해서 협박까지 해가며 나 따먹자고 이러는 건 아닐 거고.” “아뇨, 반해서인 거 맞는데요.” 상스럽기 짝이 없는 양아치, 이 인간이라면 이용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능화야, 지금까지 나 협박하고 멀쩡한 새끼가 아직 없거든. 어때, 네가 처음이 될 거 같아?” “네, 그럴 거 같아요.” 계환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웃기 시작했다. “하, 씨발….” 비웃는 게 아니라 정말 예상치 못한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한참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차는 집에서 점점 멀어졌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 계환이 그녀 쪽으로 바짝 얼굴을 들이댔다. 야한 눈매, 그 새카만 눈동자가 그녀의 뱃속까지 헤집을 것처럼 번들거렸다. “능화야.” “…….” “네 눈에는 내가 좆병신으로 보여?”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 * * “입이나 좀 쓰자. 괜찮지? 사귀는 사이에.” “아, 잠… 읍!”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뱀 대가리를 닮은 좆대가리가 우악스럽게 목구멍을 찌르고 들어왔다. 목구멍이 벌어지는 느낌이 섬뜩했다. “아… 그리고. 난 좀 거친 거 좋아하는 취향인데. 자기는 어때? 대답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푸걱, 푸걱, 푸걱. 구역질이 치밀며 자동으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차라리 빨리 그를 싸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능화는 남자 냄새를 맡아가며 입술을 조이고 어떻게든 더 힘껏 빨았다. “후우… 입 구멍은 쓸 만한데 빠는 건 영 어설퍼.” “끄… 안… 흡!” “그거 알아? 기절 직전에는 목구멍을 더 조이는 거.” 이제 그는 아예 그녀의 목구멍을 꿰뚫을 듯 쾅쾅 박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망치질이었다. 개새끼, 개새끼. 머릿속으로 욕을 반복하며 버티는 것도 한계였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분도 안 되고 기절과 현실을 오가며 눈이 히뜩 돌아가던 참이었다. 입안으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가 머리통을 쥐었던 손을 떼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눈앞은 눈물로 흐릿하고 코끝이 매캐했다. 입 밖으로 침이 줄줄 흘렀지만, 정액은 이미 전부 삼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잘 벌리네.” “하아… 흐으.” “밑에도 그러려나.” 섬뜩한 소리였다.
결혼했지만 남남처럼 지냈던 백윤하와 권우겸. 이혼 서류를 앞에 두고 윤하는 우겸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왜요?” 그녀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보고 우겸이 물었다. “갑자기 1에서 10으로 넘어가니까.” “그 씹, 하자고 여기 온 거 아니었나?” “너 원래 말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했어?” “나 잘 모르잖아요, 윤하 씨.” 그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밤처럼 농밀하고 나른해, 몸 어딘가를 살살 긁는 것처럼 오싹하고 간지러웠다. “글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빛이 그녀조차도 잘 모르는 내면의 단추를 누른 것 같았다.
욕실의 창 역시 닫아 놓은 상태라 적당히 어두컴컴했지만 낡은 나무문 사이로 얇게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천장에 일렁이고 있었다. “하….” 빈센트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작게 숨을 뱉어 냈다. “좀 더 빨리.” 건장하고 긴 목 가운데 목울대가 울렁대며 넘어가는 게 아찔하게 보였다. 나직하게 울리는 그의 신음에 공명하듯 그녀의 몸 어딘가가 찌릿하게 울렸다. 다리 사이가 욱신거렸고,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그 대단한 빈센트 글렌 굴드. 그 대단한 미친놈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한 손에 쥐고, 꼼짝도 못 하는 그의 성기를 애무하고 있다는 사실에 배덕한 통쾌함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입에 넣어 줘.” 이 순간만큼은 그가 온전히 그녀의 손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싸게 해 달라고.”
3년 차 비서 윤하경, 어느 날 회장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배덕한 관계 앞에서 흔들리는 건, 차서준 때문이었다. “날 열심히 관찰했나 봐요?” 차서준의 시선이 집요하게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비밀스러운 짓을 한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그냥 우연히 봤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하경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고 그가 웃는 듯 마는 듯 살짝 입술 끝을 올렸다. “그런데 난 윤 비서 관찰한 거 맞아요.” 그 순간, 몸속에 가벼운 전율이 일었다. “스토커 같아서 무서워요?” 당황하면 안 돼. 안 돼 제발. 그녀는 속으로 주문처럼 외우면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뇨.” “무서워야 될 텐데.” 느릿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제가 상무님께 장부를 드리면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뭔가요?” 그가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다른 누군가가 드물게 웃고 있는 그를 봤다면, 매력적인 모습에 가슴이라도 떨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만큼 두려운 순간이었다. “무릎 꿇고 애원이라도 했으면 귀엽기는 했을 텐데.”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그녀는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등 뒤에 차가운 벽이 닿았다 그는 궁지에 몰린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역겹나?” 팔딱거리는 가는 목을 물어뜯으면 속이 시원할까. “아니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 아니면 비명을 지르고 또 애원하고 애원하게 만들면 속이 시원할까. 겁먹은 척, 눈을 내리깐 앙큼한 저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부르게.
※본 도서에는 다소 폭력적이거나 호불호 갈리는 표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엄마가 네 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죽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의붓조카로 얽힐 뻔한 육태경과 영영 안 만나도 될 줄 알았다. 착각이었지만. 그는 양쪽 손을 위로 들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긁듯 넘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검고 얇은 셔츠 위로 우람해 보이는 가슴 근육이 그대로 드러났다. 길고 단단해 보이는 손가락. 그는 그 아름다운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손가락을 부러트렸다. 이젠 그 손이 그녀의 목을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차우희, 튀어 봐.” 3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분명히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 “어디 이번에도 도망가 보라고.”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쓰며 도망쳐도 그의 손아귀 안이었다. 어둑한 아스팔트에 엎드린 그녀의 눈에 그의 반질거리는 구두가 보였다. “놔줘도 도망도 못 가고.” “…….” “내가 주워가야겠네.” 그가 다가오자 우희는 눈을 감았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꼭 짐승의 아가리 안으로 삼켜지는 것처럼. *** “맛있어 보여?” 멍하니 다리 사이를 쳐다보고 있던 그녀는 뒤늦은 민망함에 홱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본 거 아니에요. 그냥 문신… 문신을 본 거예요.” 애초에 그와 해일은 그녀를 집안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 기어들어 온 쥐새끼 취급했었다. 쥐새끼가 포식자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일은 없지. 어디 한군데 살이 더 붙거나 모자람 없이 밀도 높게 정비된 몸을 보고 있자니 숨이 콱 막혔다. 아름답거나 감탄스럽기보다, 자신과는 아예 다른 인종으로 느껴졌다. “그래? 하도 입맛을 다시면서 쳐다보길래 난 또 바로 빨자고 달려드는 건가 했지. 당장 세울 거 아니면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씹질도 순서가 있잖아? 인사도 하고 간지러운 말도 좀 나누고 박아야지.” 그가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으로 침대를 짓누르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두 사람의 몸이 너무 가까웠다. “아! 싫….” “싫은지 좋은지 물어본 거 아닌데.” 그의 두 팔이 그녀의 몸을 가두듯 얼굴 옆으로 창살처럼 버티고 섰다. 그의 몸뿐 아니라 그의 시선에 갇힌 것 같아 그녀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 눈빛은 뭐라고 해야 하지? 도무지 속을 읽을 수 없는 암흑 같은 눈동자였다. 그 속에 반짝거리는 광택이 아슬아슬했다. 그녀의 허벅지에 그의 하반신이 와 닿았다. 얇은 바지 안쪽에 딱딱하고 뜨거운 게 그대로 느껴졌다. “흡!” 그가 한쪽 무릎을 다리 사이로 쓱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도 근육이 짓눌리는 것처럼 아팠다. “아… 흑.” 힘없이 다리가 벌어지자 그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 음부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 하나를 아래로 밀어 말라 있는 소음순을 벌렸다. “이거. 잘 적셔놔.” “무슨….” 그가 몸을 더 낮춰 그녀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찢어지기 싫으면.”
※본 소설은 강압적인 관계에 대한 묘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내가 끝까지 안 되겠다고 하면, 너는 내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전부 다.”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라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몰라서 그녀는 계속해서 멍청하게 굴었다. “뭐든 한다니까.”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도망가려고?” 그에게서 끈적한 악의가 느껴졌다. “그, 그러니까 보내 달라고 했잖아! 아, 어떡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녀가 말하는 와중에도 그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쳐 검은 티셔츠가 점점 더 짙어졌다. 찌른 사람은 자신인데 제가 더 허옇게 질려서 벌벌 떨고 있었다. 오싹할 정도로 아름다운 남자가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얼음송곳을 손에 들고 옷장 앞에 서 있었다. “권은호.” 문으로 빠져나가기 직전, 그가 그녀를 부드럽게 불렀다. 은호는 사지를 벌벌 떨면서도 그를 돌아보았다. “열심히 꼭꼭 숨어 봐. 내가 쫓아가서 붙잡으면 그때는 넌 좆 되는 거야.”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차시환에게서 도망치는 중이었다.
※해당 도서는 지난 3월 'SECRET나인' 증정 이벤트 때 지급되었던 도서와 동일한 도서로 추가 및 변경된 내용이 없습니다. ※사전 소지 하신 고객님께서는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싫다. 혜인은 우선환이 너무 싫었다. 얼굴만 봐도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인간은 정상이 아니었다. 화도 안 내고, 울지도 않고, 크게 웃는 꼴도 못 봤다, 심지어 술도 안 마셨다. “내가 누구야, 나 황혜인이거든? 내가 어제는 팬티까지 보여 줬는데, 그 새끼가 나를 비웃었어. 한심하다는 듯이. 믿어져? 고자나 게이가 아니고서는 절대 그럴 수가 없어.” “팬티까지 보여 줬어?” 친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굴욕적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좀 곤란하게 만들기로 했다. “우리가 할 일은 불구덩이만 파 놓는 거야. 순결한 어린 양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지켜보자고.” 친구는 눈썹을 음흉하게 꿈틀거리며 두 손을 맞잡아 비볐다.
가난한 참의의 딸에서 갑자기 좌의정의 양딸로, 또 군부인마마로, 신분이 널을 뛰게 된 설아. 대의는 무엇이고, 충심은 또 무엇인고. 그런 것 다 모르겠다. 그녀는 자신이 산 제물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게 입 한번 맞춰 보시오.” 무례하고 야만스러우며 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자가 군마마라고? 이대로 콱 꼬꾸라져 돌이 되어 죽는다 해도 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리라. “소박 놓으신다고 해도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싫습니다.” 이런 모자란 것. 쯧쯧. 거기서는 절대로 그런 마음이 아니옵니다, 진실로 연모하는 마음뿐이옵니다, 그렇게 말해야지. 율호는 갑자기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워졌다. <본문 내용 중에서> “나으리, 불을 좀 꺼주십시오.” “불을 켜고 보는 게 더 좋겠소.” “그게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몰라서 묻나? 보이지 않으면 내가 끌어안고 있는 몸뚱이가 기녀인지, 아내인지 무슨 수로 구분한단 말이오.” “헉!” 속치마 밑으로 그의 손이 불쑥 들어와 종아리를 움켜쥐었을 때,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발을 버둥거렸다. “첫날밤에 지아비에게 발길질이라도 할 참인가?” “아!”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로 닿았다. 붉게 연지를 바른 도톰한 아랫입술이 그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싫소?” “희, 희롱 마십시오.” “희롱을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희롱을 하지 않으면 어찌 남녀 간에 운우를 나눌 수 있나.” “하룻밤 창기에게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옳거늘, 저는 혼례를 치른 처입니다. 저를 어찌 이리 장난처럼 대하십니까.” “그럼 몸이 동하지도 않는데 바로 넣고 몇 번 흔들다 방사나 하고 끝내란 말이오? 그 무슨 재미야? 예의? 예의라니? 원래 남녀 간의 일은 지극히 음탕해야 재미난 것이오. 하고, 기생이 아니고 안방마님이면 사내의 밑에서 감창(신음 소리)을 하는 대신 시구라도 읊는단 말인가?” “무어라고요? 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 저잣거리 주모의 치마폭에서 놀고먹는 무뢰배라도 이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하, 무뢰배라? 무뢰배 맞지. 내 일찍이 나에 대해 무뢰배 난봉꾼이라고 소문이 도는 것은 알고 있었소만, 게도 어디서 내 소문을 들었나 보오? 지아비 될 사람이 누구인지 호기심이 나 계집종에게 알아 오라고 시키기라도 하였소?” “그런 게 아닙니다.” “굳이 변명할 것 없소. 내가 다소 노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 그걸 가지고 돌아가신 선대왕 형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생겼다 말들이 많다지? 아니, 사내가 술 좋아하고 계집 좀 안았기로 그게 흉이 되다니. 벌써부터 투기라도 할 참이오?” “제 말 어디에 투기가 있습니까? 이 길로 바로 기생집에 가신다 해도 절대로 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이든 스물이든 마음대로 품으소서.” “그것 참, 한 마디도 안 지는군.” “송구합니다.” “김곡서 대감께서 친히 나서서 내 허물을 덮어 줄 현숙한 부인을 구해 주리라 하신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기는 하오만, 솔직한 말로 난 현숙한 부인은 필요가 없소이다. 거, 그래 봐야 잔소리만 장하고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누워 있어 봐야 잠자리에서는 아무 재미가 없단 말이야. 그러니 얌전 빼지 마시오. 내가 이리 오시오 하면 냉큼 와서 안겨 교태도 부리고 다리를 벌려 내 허리도 척하니 끌어안고 그리 나긋나긋하게 굴라, 이 말이오. 아셨소? 자, 그럼 이제 우리 같이 놀아 봅시다. 부인, 내게 먼저 입 한번 맞춰 보시오.”
그녀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제가 상무님께 장부를 드리면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뭔가요?” 그가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다른 누군가가 드물게 웃고 있는 그를 봤다면, 매력적인 모습에 가슴이라도 떨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만큼 두려운 순간이었다. “무릎 꿇고 애원이라도 했으면 귀엽기는 했을 텐데.”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그녀는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등 뒤에 차가운 벽이 닿았다 그는 궁지에 몰린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역겹나?” 팔딱거리는 가는 목을 물어뜯으면 속이 시원할까. “아니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 아니면 비명을 지르고 또 애원하고 애원하게 만들면 속이 시원할까. 겁먹은 척, 눈을 내리깐 앙큼한 저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부르게.
“저기….” 목이 콱 막혀 재인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잠시만 있어 보라는 듯 신호를 보내고 거실에 나가 생수병을 가져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마시고 얘기해.”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에게서 차가운 유리병을 받아 들었다. “저기 어제 일은… 일단 죄송합니다. 제가 기억이 잘 안 나서요. 말이 안 되는 변명인 거 아는데,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몰라서요.”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특별히 술이 세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칵테일 한 잔에 필름이 끊겨 진상을 부릴 정도는 더더욱 아니었으니까. “아, 지금 사람을 덮쳐 놓고 발뺌을 하시겠다?” “덮… 덮쳐요? 제가 맥타가트 씨를요? 하….” 뭐가 억울한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억울했다, 막막하고 앞이 캄캄했다. “물론, 맥타가트 씨야 여자한테 인기도 많으실 거고,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겠지만 저는 전혀 아닙니다. 저는 여기 일하러 온 거지,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정말 눈곱만큼도 없어서요.” “그런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사람치고는 굉장하던데.” 일러스트: 엑저
날 사랑하지 마. 나는 벌레야. 도희야, 나비도 벌레야. 청량감이 느껴지도록 시원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깊은 눈매의 남자는 이제 깊은 밤처럼 어둡기만 했다. 올바르지 않은 아버지를 막고자 했던 청년은 이제 거침없이 흙탕물 속에 몸을 담그는 사내가 되어 있었다. 기어이 끌어내려 똑같이 진창에 구르게 만들고 싶었어. 난 정말 벌 받을 거야. 채도희. 그것은 쓴웃음을 짓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역겨운 육욕이었다. 겉으로는 점잖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를 미치도록 열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녀가 그의 몸 위에 앉아 있었다. 내가 너를 다치게 할 거야. 네가 처음 우리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널 보면 음탕한 생각을 떠올렸어. 문성록. 그는 긴 손가락으로 도희의 턱을 치켜 올리고 삼킬 듯 내려다보았다. 다가오는 그의 존재감이 너무 압도적이라 그녀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조용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 흐릿한 긴장이 감돌았다. “네 눈빛 목소리, 그리고 네 온 몸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왜 나는 너를 믿을 수가 없지?” 그는 두께를 가늠해 보듯 그녀의 목을 그러쥐었다. “내 마음을 당신이 그렇게 잘 알아요?” “아니야?” 가볍게 감싸 쥐었다고 해도 커다란 손안에 잡힌 느낌은 끔찍했다. 그가 조금만 힘을 주면 여지없이 부러지겠지. 하지만 그가 정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반항할 생각은 없었다. “네 사랑의 값어치를 모르겠어.” 그녀의 뺨에 그의 숨결이 닿았다. 이렇게 몸이 떨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기대감 때문일까. “내가 어떻게 해도 믿지 않을 거잖아요.” 그녀는 붉어진 눈을 한 채, 중얼거렸다. “노력해봐.” 철컥, 그가 선 채로 허리띠를 풀었다.
“겁도 없이 막 덤비네.”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겠다고 해서 안심돼? 이 새끼가 어디까지 버티나 장난쳐 보는 것도 아닐 테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순간, 덜컹하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선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만큼이나 요동치고 있었다. “선 넘지 마.” 그렇게 말하고 그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은 완벽하게 다정해서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넘으면 어떻게 돼요?” “내가 너 삼켜 버릴 수도 있어.” 일러스트: 알페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을 감싸 쥐고 있었다. 손끝이 단정했다. 깨끗한 손등에는 그가 남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보여 주듯 핏줄이 툭툭 올라와 있었다. 강하고 아름다운 손이었다. 그녀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 그는 잠깐 말문이 막힌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리가 이런 거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잖아.” “글쎄.” 그러고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아쉬운 것 같아.” “뭐가?” “너.” 이번에는 그녀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갑자기 불쑥 허리를 기울여 키스를 했기 때문이다. 그날, 문성록은 도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 가끔 서이는 그날 밤을 떠올려 곱씹었다. 그날의 조명과 빗소리, 텁텁할 정도로 오래된 종이 냄새와 귓가에 와 닿던 그의 나직한 숨소리, 그와의 키스를.
“내 앞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춰 봐라. 내가 흔들리나.” 외모에 눈길이 가는 것과 이성적인 매력에 끌리는 감정은 다르지. 은재는 친구인 이도현을 비웃었다. “너 내 알몸 본 적 없잖아.” “내가 왜 네 알몸을 본 적이 없어? 열 번은 봤겠다.” 아기때 목욕도 한 사이끼리. 왜 이래? 친구로서는 최고일지 몰라도, 남자로 도현 같은 공붓벌레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보기 전까지는.
그녀는 도망치듯 그의 손을 빠져나갔다. “뭐 하는 거야?” 태오는 혀로 아랫입술을 핥으며 웃었다. 조금 전까지 손안에 쥐고 있던 걸 놓친 아쉬움과 함께 갑자기 아래에서 찌릿하게 느낌이 왔다. “정말 도망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저도 모르게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어깨가 움찔하고 위로 튀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 안 되지. 이런 식으로 가면 겁먹을 게 빤하다. “착하게, 얌전히.” 입으로는 주문처럼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뜨거운 피가 펄펄 끓을 것처럼 한군데로 몰렸다. 흉포한 충동을 억누르며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쫓아 걸어가는 그의 허벅지가 돌처럼 단단했다. 진짜 사냥감의 뒤를 쫓는 것처럼 피부가 흥분으로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겁도 없이 막 덤비네.”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겠다고 해서 안심돼? 이 새끼가 어디까지 버티나 장난쳐 보는 것도 아닐 테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순간, 덜컹하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선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만큼이나 요동치고 있었다. “선 넘지 마.” 그렇게 말하고 그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은 완벽하게 다정해서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넘으면 어떻게 돼요?” “내가 너 삼켜 버릴 수도 있어.” 일러스트: 알페
그의 페르소나가 되고 싶은 인기 없는 배우와, 문밖의 세상이 귀찮은 인기 작가의 일주일간의 레슨. “불합격.” “이유가 뭐죠?” “고작 이런 가벼운 키스에도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당장 키스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감정, 이성을 넘는 그 절박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도 수십 명의 스태프들 앞에서?” “그러니까 당신이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발췌문 “후회는 안 하나?” “여기 즉흥적인 기분으로 온 건 맞아요. 하지만 인사불성으로 취한 건 아니었어요.”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을 수도 있었잖아.” “그렇죠.” “무모했다는 생각은 안 들고?” “무모한 정도가 아니라 미친 거죠. 나도 알아요. 만약 당신이 이곳에 없거나 문을 열어 주지 않았더라면 택시를 부를 수 있는 곳까지 족히 한 시간은 걸어갔어야 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었대도 후회는 안 했을 거예요. 매일 밤마다 벌건 얼굴로 이불을 박차고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났단 말이에요. 앞으로 향후 10년은 더 그럴 거고.” “어째서?” “너무 창피했어요. 부끄러웠고, 그다음에는 화가 났어요. 난 인기 있는 배우는 아니지만 내 연기에 대한 자부심은 대배우 못지않다고요. 만약 몸을 팔아서 혹시라도 소희 역을 따내면, 지금까지 지켜 온 내 자부심은 뭐가 되냐고요. 당신이 그렇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서는 느낌이었단 말이에요.” “분명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당신 매니저가 전화해서 능글맞은 포주처럼 구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나.” “그럼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는 거네요?” “아닌 건 금방 알았어. 원하는 게 있어서 유혹하러 온 여자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꼼짝도 안 하고 누워 있었으니까.” “말 좀 예쁘게 할 수 없어요?” “생겨 먹은 게 그래.” “딱 일주일이에요. 그 뒤에는 서로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깨끗하게 끝내요.” “당신이 오디션에 붙든, 떨어지든?” “물론이죠. 난 당신과 첫 번째 섹스를 하지만, 두 번째 남자를 만날 때에는 진짜 사랑을 나눌 거예요.”